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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가시나이까… 안되지요… 안되지요…”

입력 | 2008-02-29 02:56:00

28일 오전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화정체육관에서 열린 화정 김병관 전 동아일보 회장의 영결식에서 고별창을 하고 있는 안숙선 명창. 이훈구 기자


안숙선 명창, 애끊는 고별창에 참석자들 연방 눈시울

“제 소리, 제 장단을 아끼시며 민족문화 창달에 헌신하신 화정 선생님… 안 되지요. 안 되지요… 산지니 수지니 해동청 보라매도 쉬어 넘는 고봉 장성령 고개, 그 너머 피안의 세계로 정녕 가시나이까.”

화정 김병관 전 동아일보 회장의 영결식이 열린 28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화정체육관. 흰색 치마저고리를 차려입은 안숙선(59) 명창의 애끊는 고별창(告別唱)이 영결식장을 가득 메운 조문객들의 가슴을 적셨다. 안 명창의 절절한 노랫가락이 한 마디, 두 마디 넘어갈 때마다 조문객들은 때로는 고개를 숙이고 때로는 눈시울을 훔쳤다.

이날 무대에 오른 안 명창은 애통한 심정이 절절히 밴 소리로 고인과 작별을 고했다. 고별창의 가사는 고인에 대한 안 명창의 애틋한 기억을 바탕으로 가곡 ‘비목’의 작사가인 한명희(69) 전 국립국악원장이 썼다.

“언젠가 김소희 선생께 배우신 소리라며 흥타령을 부르셨지요. ‘아깝다. 이내 청춘 언제 다시 올거나. 철 따라 봄은 가고 봄 따라 청춘 가니, 오는 백발 어이할까! 아이고 대고 흥 성화가 났네 흥’… 화정 선생님의 후덕한 감화, 더욱 깊고 두터워서 못내 아쉽고 애통할 뿐입니다.”

안 명창은 영결식 내내 고인과의 오랜 인연이 떠오르는 듯 두 눈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겨우 삼키곤 했으며 분향 때에는 연방 눈가를 훔쳤다.

그는 “한국은 물론 세계 곳곳에 판소리를 널리 알리려 노력하신 분”이라며 “한민족의 음악인 판소리를 회장님만큼 아껴 주실 분이 다시 있을지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다”고 말했다.

안 명창은 1979년 국립창극단에서 데뷔한 뒤 동아일보가 주최한 창극 ‘임꺽정’ ‘천명’ ‘홍범도’ 등에서 주역을 맡으면서 김 전 회장과 인연을 맺었다. 김 전 회장은 우리 전통 가락과 소리의 계승 발전을 위해 1989년 ‘완창 판소리 발표회’를 창설했으며, 1990년 창극 ‘아리랑’의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순회공연을 개최하기도 했다.

안 명창은 영결식이 끝난 뒤에도 검은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며 전통문화에 대한 고인의 애정을 돌아다봤다. “돌아가신 사모님을 기리기 위해 댁내에 지은 한옥 별채를 보여주시며 ‘정기적으로 이곳에 국악인들이 모이는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하셨어요. 민족의 언론이 민족의 소리를 부흥해야 한다는 뜻이었는데….”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 영상취재 : 정영준 동아닷컴 기자
▲ 영상취재 :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안숙선 명창의 조창(弔唱)▼

작사=한명희 시인((가곡 '비목'의 작사가)· 전 국립국악원장

창=안숙선

만경들 고창골에 봄비 내리고 진국명산 삼각산에 서설(瑞雪)이 내리며, 온누리 삼라만상 생명의 물결 가득하니, 김회장님 당신께서도 연년익수(延年益壽) 만수무강 누리시리라 믿었는데, 이 무슨 비보란 말씀이외까. 이 무슨 대경실색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외까.

존경하는 화정 선생님! 나라가 어려울 때, 겨레가 곤고(困苦)할 때 항상 민족의 희망으로 국체를 지켜내던 민족언론 동아 가족, 국내외에 자랑스런 민족의 대학 고려대에 모여든 천하 영재들, 고려중앙학원의 요람 속에서 웅지를 키워 가는 나라의 동량지재, 이들 모든 화정 선생 평생의 분신들은 어찌하라고 이처럼 홀연히 모습을 숨기시나요. 이렇게 황망히 작별을 고하시나요.

제 소리 제 장단을 아끼시며 민족문화 창달에 헌신하신 화정 선생님, 안중근 의사와 홍범도 장군 같은 신작 창극에, 중앙아시아 알마타와 타슈켄트 러시아의 모스크바, 조국의 선율 아리랑 가락으로 촉촉이 위무하던 고려인의 눈물! 이제 어느 누가 그들의 외로움을 보듬어 주고, 이제 어느 누가 문화국민의 품격을 이토록 드높여 가며 이끌어 주시나요. 안 되지요. 안 되지요. 이젠 정말 아니지요.

인자하고 후덕하신 화정 선생님, 정녕 무정하게 가시나이까. 만경창파에 배 띄워서 총총히 가시나이까. 산지니 수지니 해동청 보라매도 쉬어 넘는 고봉 장성령 고개, 그 너머 피안의 세계로 정녕 가시나이까. 선조 선친 혈육의 정이 그다지도 그리우셨나이까. 비익조(比翼鳥) 연리지(連理枝)라 사모님의 자애로운 모습이 그다지도 애틋하게 사무치셨나이까. 추월이 만정할 때 청천(靑天)을 울어예는 외기러기처럼, 창졸간에 홀연히 이승을 하직하시니, 남은 자들 하염없이 진양조 이별가로 목이 메어 우옵니다.

언젠가 김소희 선생께 배우신 소리라며 흥타령을 부르셨지요. '아깝다. 이내 청춘 언제 다시 올거나. 철따라 봄은 가고 봄따라 청춘 가니, 오는 백발 어이할까! 아이고 대고 흥 성화가 났네 흥'

그렇습니다. 화정 선생님, 사람이 비록 백년을 산대도 인수순약격석화(人壽瞬若擊石火)요 공수래 공수거를 왜 아니 모르리까마는, 화정 선생님 남기신 업적 너무 높고 커서, 화정 선생님의 후덕한 감화 더욱 깊고 두터워서, 못내 아쉽고 애통할 뿐입니다.

동원도리(東園桃李) 편시춘(片時春)을 언제 다시 맞을 게며, 백천(百川)이 동도해(東到海)면 언제 다시 서쪽으로 되돌아 오겠나이까!

부디 하늘나라 선계에서 명복을 누리소서. 천복(天福)을 누리소서. 영생을 누리소서.

▶dongA.com에 동영상


▲ 영상취재 : 동아닷컴


▲ 영상취재 : 동아닷컴


▲ 영상취재 : 동아닷컴


▲ 영상취재 : 동아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