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커버스토리]패션리조트서 봄날의 휴식을

입력 | 2008-02-29 03:10:00


세련된 건물 예술로 주목받는 휴양시설들

처음에는 그냥 잿빛 건물이었다. 맑은 날이면 바다 건너로 또렷이 보인다는 전남 여수조차 가려 버린 안개 탓이었다. 하지만 어스름이 내리자 탄성이 터져 나왔다. 보라색, 빨간색으로 변하는 조명을 받아 건물은 다시 태어났다. 2006년 11월 경남 남해군 남면에 문을 연 힐튼남해골프&스파리조트다.

건물이 패션으로, 또 예술로 거듭나고 있다. 도심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휴양지의 호텔이나 리조트는 더하다. 고성장 시대에는 사각형의 초고층 호텔에서 잠을 자고 다음 날이면 인근 관광지를 빨리 도는 게 당연했다. 이제는 아름다운 호텔이나 리조트 안에서 쉬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멀리 가지 않아도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건물 자체가 휴식이 되는 시대가 됐다. 봄이 흐드러지면 아름답고 자연을 즐길 수 있는 호텔과 리조트를 찾아보면 어떨까.

○ 호텔, 리조트가 고정관념을 버리면

언젠가부터 사람이 사는 공간은 상자 모양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생겼다. 하지만 ‘초가집’ ‘너와집’은 그렇지 않았다.

제주 서귀포시 중문단지에 자리 잡은 씨에스호텔은 이런 과거를 품에 안은 호텔이다. 제주 초가집을 인수해 호텔로 개조했다. 띠를 얹고 굵은 밧줄로 바둑판처럼 얽어맨 제주 초가 전통의 모양새나 호텔 객실을 둘러싼 돌담이 제주도의 여느 민가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중문단지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안덕면의 포도호텔. 빼어난 운치와 아름다운 건물로 이름나 있다. 제주의 오름과 초가집을 모티브로 해 지붕이 한 송이 포도처럼 여러 굴곡의 곡선으로 형상화돼 있다.


▲ 촬영 : 박영대 기자


▲ 촬영 : 박영대 기자

초가집 호텔… 포도 호텔… 대정원 호텔

2000년 재일교포 이타미 준 씨가 건축했다. 이 호텔로 인해 그는 건축가로는 세계 처음으로 2005년 10월 ‘슈발리에’상을 받았다. 슈발리에상은 1957년 시작된 프랑스 최고의 문화훈장이다.

지붕은 회백색의 티타늄으로 만들었다. 티타늄은 최근 들어 각광받는 건축물 소재다. 천년이 지나도 녹슬지 않는 영구성에 잘 구부러지는 유연성까지 더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잿빛이지만 빛의 각도에 따라 다양하게 빛난다. 그래서 힐튼남해도 클럽하우스의 지붕, 벽면뿐만 아니라 물결무늬로 장식된 게스트하우스까지 티타늄을 썼다.

이 리조트의 건축가 민성진 씨는 “티타늄은 밝은 날은 빛을 반사해 황금빛으로 반짝이지만 흐린 날은 빛을 빨아들여 시간대에 따라, 날씨에 따라 건물의 느낌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잘 구부러지기 때문에 건물 디자인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 호텔 클럽하우스는 각도가 다른 사선 모양의 지붕이 한데 어우려져 있다. 스파, 레스토랑, 메인 로비, 연회실은 방마다 용도가 다른데 굳이 똑같은 상자모양을 만들 이유가 없었다.


▲ 촬영 : 박영대 기자


▲ 촬영 : 박영대 기자

○ 눈과 몸이 즐기는 자연

휴양지의 호텔들은 자연과 숙소의 조화를 중시한다. ‘보는’ 자연이 아닌 ‘직접 즐기는’ 자연을 선사하는 것이다. 포도호텔은 방마다 통유리문을 통해 인공으로 조성한 정원이나 늪지대로 나갈 수 있다. 정원 속 13개의 텃밭에는 봄이 오면 농부들이 실제로 밭을 맨다. 그 자체로 풍경이다.

이타미 준 씨는 e메일 인터뷰에서 “만든 정원이긴 하지만 제주도의 진짜 자연, 산림을 걷고 있다는 느낌을 주도록 애썼다”고 말했다. 씨에스호텔은 돌담 안쪽으로는 반신욕이나 목욕을 즐길 수 있는 야외탕이 있다. 뜨끈한 물을 받아 놓고 가족끼리, 부부끼리 제주의 봄 공기를 마시기에 딱 좋다.

자연을 즐기기 좋은 호텔로는 제주 서귀포시 중문단지의 신라호텔도 빼놓을 수 없다. 18년 전에 지어진 건물이라 요즘처럼 건물 자체를 자연에 가깝게 지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내 특급호텔 중에서는 유일하게 자연체험학습장 등 정원에 3만여 m²의 터를 할애했다.

터가 아주 넓어 비단잉어, 앵무새, 토끼에게 먹이를 주는 자연체험학습장도 갖췄다. 신혼부부의 이름표를 단 나무가 심어진 허니문 로드, 바다가 보이는 깎아지른 낭떠러지 위에 조그만 우체통이 놓여 있는 ‘첫사랑의 언덕’ 등 10개의 테마로 나뉘어 있다. 이 정원 덕분에 신라호텔은 국제 여행전문지나 경영지가 선정하는 최고의 호텔에 뽑히기도 했다.

지난해 시작된 자연체험학습에 참여한 미국 테네시 주에서 온 마이클 브루스터 씨는 “세계의 많은 도시의 특급호텔을 다녔지만 이처럼 자연을 즐길 수 있도록 된 곳은 드물다”고 말했다.

○ 건축가를 보고 호텔을 선택하는 시대

친 자연주의 건축물이 각광받으면서 하와이나 유명 관광지의 해변가 호텔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초고층 건물이 즐비하던 곳들이 5층 이하의 빌라형 건물로 바뀌고 있고 산책로 등 쉬는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고 있다. 통유리를 써서 자연광을 최대한 끌어들이기도 한다.

이렇듯 아름다운 건물이 속속 들어서는 건 한국 건축계에도 유럽과 마찬가지로 분업화가 시작됐다는 신호다. 건축가가 조명, 조경, 인테리어를 직접 하지 않고 전문가에게 맡김으로써 전체를 조율하고 건축물의 아름다움도 신경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브랜드가 아니라 건축가의 이름으로 호텔을 고르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제주 남해에서

글=제주·남해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사진=제주·남해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디자인=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dongA.com에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