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작 위에 걸린 더치 오븐(각종 요리를 할 수 있는 무쇠 솥)에서는 하얀 김이 담배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백숙이 고아지고 있었다. 맛있는 냄새가 풍겼다. 장작불 위에서 3시간 넘게 곤 끝에 오븐 뚜껑이 열리자 주변 텐트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든다. 지나가던 아이들도 거든다. 캠프장의 인심은 이처럼 후하다. 10여 명이 묵은 김치를 반찬 삼아 닭 2마리를 금세 해치운다. 한발 늦게 온 사람들은 남은 국물에 면을 넣어 끓인 닭 칼국수로 아쉬움을 달랜다. 23일 오후 3시 오토 캠퍼들의 텐트 20여 동이 둥지를 튼 경기 양주시 광사동 씨알농장. 오토캠핑을 하면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는 먹는 재미다. 같은 음식이라도 밖에서 먹을 때가 더 맛있다. 같이 온 사람들끼리 나눠 먹어서 더 즐겁다. 추운 겨울 캠퍼들이 어떻게 음식을 준비하고 텐트 안에서 어떤 요리를 먹는지 살펴봤다.》
양주 씨알농장의 캠프요리
○ 여러가족 함께 모여 나눠 먹는 재미 솔솔
텐트 안에서는 엄마 3명과 아이 4명이 둘러앉아 간식을 먹고 있었다. 떡볶이에 라면 사리를 넣은 ‘라볶이’와 김치전이 메뉴였다. 김치전이 익자 박정익 군은 옆 텐트로 김치전을 날랐다. 아빠들이 김치전을 안주 삼아 소주를 곁들이고 있었다.
캠핑에 재미를 붙이고 캠핑 동호회 회원들과도 친분이 쌓이기 시작하면 4, 5가족이 같이 캠핑을 다닌다. 부부나 자녀들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자연스럽게 뭉치게 된다. 같이 다니는 사람들은 각자 음식을 한 가지씩 준비해 나눠 먹는다. 한국의 오토 캠퍼들만의 독특한 문화다.
김대식 씨(39)는 “텐트를 옮겨 다니면서 준비해 온 음식을 나눠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며 “겨울에는 텐트 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다른 계절보다 더 많이 먹게 된다”고 말했다.
겨울에는 장작불 위에서 오래 끓여서 조리하는 음식이 ‘계절 별미’로 통한다. 삼계탕, 선짓국, 곰국 등이 캠프장에서 인기 있는 겨울 메뉴다.
이런 요리는 코펠이 아니라 더치 오븐에서 한다. 서부 시대 카우보이들이 스튜를 끓여 먹던 더치 오븐은 무게가 4kg이 넘지만 고기나 면발을 쫄깃하면서도 부드럽게 해 준다. 그래서 캠퍼들 사이에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오토 캠퍼들은 대부분 금요일 저녁에 와서 일요일 점심 무렵에 철수한다. 캠핑을 하면서 4, 5끼니를 먹는 셈이다. 초등학생 자녀 2명을 둔 4인 가족의 경우 식비로 5만∼7만 원이 든다.
회사원 이한영 씨는 “일주일 식비를 캠핑 와서 다 털어 먹고 평소에는 라면만 끓여 먹는다”며 웃었다.
○ 아이들 “캠핑 오면 밥 세 그릇 먹어요”
홍연기(41) 백육현(37) 씨 부부 텐트는 오토캠핑 회원들 사이에서 ‘식당’으로 불린다. 다양한 음식을 준비해 와서 주변 사람들과 나눠 먹기 때문이다.
이들 부부의 메뉴를 보면 식당이란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23일 아침 김치찌개, 점심 삼계탕, 간식 자장 떡볶이, 저녁 문어, 24일 아침 라면, 점심 떡만둣국.
백 씨는 “금요일에 장을 보고 미리 손질을 해서 떠난다”며 “아이들도 잘 먹는 데다 음식을 나눠 주면 다른 사람들도 즐겨 준비하는 게 즐겁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의 둘째 아들 준서(8)에게 “캠핑 오면 밥을 얼마나 먹느냐”고 물었더니 “세 그릇 (먹는다)”이라며 손가락을 펴 보인다.
오토 캠퍼들은 캠프장에서 해 먹는 음식만 보고도 캠핑 경력이 얼마나 됐는지 짐작할 수 있다.
캠핑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의 저녁 메뉴에는 숯불에 구워 먹는 고기가 빠지지 않는다. 초보자들은 ‘캠핑=바비큐’라는 생각들을 하기 때문이다. 아침 메뉴는 주로 라면이다.
캠프장에서는 주로 코펠을 버너에 얹어서 밥을 한다. 초보자들은 버너 아래쪽은 타고 위는 생쌀인 ‘삼층밥’을 짓기 일쑤다.
워커힐호텔 조리사 출신으로 캠핑 경력 5년째인 이진욱 (41)씨는 “코펠에 밥을 지을 때는 전기밥솥에서 할 때보다 물을 20% 정도 더 넣고 일단 한 번 끓고 나면 불을 최대한 줄이는 게 포인트”라고 조언한다.
반면 경력이 오래된 사람들은 캠핑을 와도 집에서 먹는 식단과 비슷하다.
캠핑 경력 3년째인 이대휘 씨(42)는 “집에서는 잘 먹지 않던 음식도 캠핑을 오면 맛있게 먹는다”며 “냉동실에서 잠자고 있던 음식이 자연으로 나오면 훌륭한 요리가 된다”고 말했다. 숯불 위에 올리는 재료도 초보 캠퍼와는 다르다. 장작불로 직화(直火)구이를 하지만 고기 대신 조개나 새우, 주꾸미 등이 올라간다.
이런 요리는 특별 메뉴이고 캠퍼들은 대부분 캠프장에 와서 끓이거나 데우기만 하면 바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좋아한다. 야채나 생선은 미리 다듬어서 가져온다. 준비하는 시간뿐만 아니라 음식물 쓰레기도 줄기 때문이다.
월간 오토캠핑 홍혜선 편집장은 “캠프장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것이 자연과 더불어 사는 캠퍼들의 에티켓”이라고 말했다.
양주=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