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오후 본사에서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을 마무리하고 있는 선정위원들. 왼쪽부터 이유선 이명현 이종필 강신주 서동욱 장대익 씨. 이들은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은 시대적 흐름”이라며 “선정 도서들은 학문 간 소통이 어디까지 와 있는가를 알려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2008 책 읽는 대한민국’의 두 번째 시리즈가 3일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으로 출발한다. 에드워드 윌슨이 설파한 ‘통섭(統攝)’처럼 관습적인 학문 영역을 벗어나 벽을 허물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진리에 접근해 보자는 취지의 책을 골랐다.
노의성 사이언스북스 편집장, 김인호 바다출판사 대표 등에게 조언을 구해 선정위원을 뽑았다. 천문학자인 이명현 연세대 천문대 책임연구원, 물리학자인 이종필 고등과학원(KIAS) 연구원, 과학사학자인 장대익 동덕여대 교수, 서양철학자인 서동욱 서강대 교수, 동양철학자인 강신주 연세대 강사, 프래그머티즘을 전공한 이유선 군산대 교수 등 자연과학자 3명과 인문학자 3명에게 책을 추천받았다. 이들은 모두 30, 40대 학자들이다.
6명의 선정위원은 온·오프라인에서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책을 골랐다. 각각 추천한 책에 대한 평가를 서로 검토한 뒤 모두가 합의하는 책을 30권 선정했다.
지난달 25일 선정위원 6명이 본사 회의실에서 이 시리즈의 의미 등을 말했다.
▽이유선=왜 이런 작업이 지금 시점에서 필요한지부터 얘기해 보자. 경계를 허문다는 말 자체가 학자나 영역에 따라 다른 의미일 수 있다.
▽장대익=서점에 가면 책 분류가 시대에 뒤처졌다는 생각이 든다. 영향력은 크지만 한 가지 장르로 정의하기 힘든 책들이 들어갈 서고가 없다. 시대는 변했다. 철학 생물학 등 기존 잣대로는 나눌 수 없는 공동 연구가 학계에는 이미 활발하다.
▽서동욱=그 속도도 엄청나다. 해외를 보면 프랑스의 경우 학제 간 소통을 다룬 ‘크리티크’라는 시리즈가 대중을 상대로 나온 지 꽤 됐다. 학문의 넘나듦은 학자만의 관심사가 아닌 시대적 화두로 자리 잡고 있다.
▽강신주=동아시아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소개한 일본 이와나미(巖波) 출판사의 ‘아시아 신세기’가 대표적 사례다. 삶의 주변에서 습관적으로 지나치는 것에서부터 ‘통섭’이 이뤄지고 있다. 대중이 공감할 만한 테마로도 학문적으로 성찰할 것들이 많다.
▽이명현=책 선정도 일상에서 고민하는 문제를 경쾌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초보자에겐 쉽지 않은 책도 있다. 하지만 기계적 접근보다 독서를 통해 자신과 융화되는 화학반응을 일으킬 만한 도서 목록이다.
▽이종필=무엇보다 이번 책들은 크게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넘나들고, 작게는 하나의 세부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거대 담론을 한 번에 주워 담을 수는 없다. 6명이 모였지만 한계도 있다. 우리 역시 시행착오를 겪으며 해답을 찾아 가는 과정이었다. 그 실천적인 과정을 함께 가보는 것도 의미가 크다고 본다.
▽이유선=‘학문 허물기’라는 용어는 20세기 이후 등장했다. 이 때문에 역사성을 고려해 고대나 근대의 통합은 제외했다. 국내외에서 논의되는 이슈들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장대익=국내에서도 이런 논의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처럼 다양한 학자들이 함께하는 기회는 흔치 않다. 이 때문에 책 소개에 그치기엔 아쉽다. 이번 도서를 일종의 기초 텍스트로 삼아 앞으로 함께 성과물을 만들어 보자.
▽서동욱=흥미로운 제안이다. 다만 학제를 뛰어넘는 성과물은 시간과 노력이 배로 들 것이다. 단순히 소통이란 정의도 조심스럽다. 신천지를 개척하는 굳건한 마음이 필요하다.
▽강신주=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하나의 여행이다. 각 분야의 전문가가 마음이 맞아 함께 세상을 탐구하는 것이다. 비슷한 사고를 가진 이보다 다른 관점을 가진 이들의 여행이 훨씬 재미있다. 그 과정에서 각자 얻는 게 있고 자기 분야에 녹여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본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1] 과학의 최전선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예술과 철학, 문학은 상호 작용하는 인간의 마음의 산물이며, 인간의 마음은 인간의 뇌의 산물이다. 인간의 뇌는 부분적으로 인간의 유전체에 의해 조직되며, 진화라고 불리는 물리적 과정에 의해 진화했다.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과학에 입각한 인문주의자들도 지적으로 치우침이 없다. 그들은 ‘시스템’이나 ‘학파’에 따라 작업한다기보다는 다양한 원천들에서 아이디어를 찾고, 가치가 입증된 아이디어는 받아들인다.”》
현대는 지식정보 산업시대라고 한다. 그만큼 지식의 가치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만큼 복잡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일련의 혼돈 속에서 방향과 가치관을 잡아 줄 이들도 존재할 터. 저자는 그들을 ‘지식의 최전선에 있는 사상가’라 부른다.
‘과학의 최전선에서…’는 21세기 새로운 지적 풍경에 서 있는 그 사상가들의 이야기다. 여기서 사상가란 기존의 쓰임새와는 약간 다르다. 중세시대엔 지식은 그 자체가 온전히 인문학을 뜻했다. 이 때문에 사상가란 용어도 인문학적 의미가 강했다. 하지만 저자가 보기에 현대 사상가란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사람이다. 새로운 사상을 제시하는 ‘제3의 문화’ 개척자들이다.
그렇다면 그 개척자들은 누구인가. 이 책에 등장하는 면면을 보자. ‘빈 서판-인간은 본성을 타고 나는가’의 저자인 스티븐 핑커 매사추세츠공대(MIT) 뇌과학 교수, 인지과학 프로그램을 연구하는 앤디 클라크 인디애나대 철학과 교수, 컴퓨터사회의 미래를 예측하는 세스 로이드 MIT 기계공학과 교수 등.
이들은 하나같이 자연과학 또는 첨단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그들이 인문사회 분야를 논하고 있는 것이다. 책의 표현에 따르면 ‘마침내 과학이 철학과 종교의 땅으로 나아가는 깊고 크고 야심에 찬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총, 균, 쇠’를 쓴 세계적 석학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왜 유럽과 아시아가 세계를 지배했는가’를 예로 들어 보자. 이 질문은 ‘아메리카나 호주, 아프리카는 왜 세계를 지배하지 못했을까’라는 뜻이기도 하다. 즉 생리학자이자 진화학자가 학문의 영역을 넘어 역사를 고찰하는 것이다.
역사에 접근하는 과학자의 논의는 독특하다. 유라시아는 농경사회로 빨리 발전했기에 다른 대륙을 지배했다. 이때의 무기는 가축과 지형이었다. 가축은 농경사회를 이끌어 가는 중요 매개체인 데다 동서축이 긴 유라시아는 위도와 날씨가 비슷해 가축을 퍼뜨리는 데 수월했다. 그러나 아메리카나 아프리카는 남북축으로 뻗은 지형 특성상 가축이 쉽게 퍼지지 않아 발전이 더뎠다고 분석한다. 이처럼 과학자들은 인문학자들이 놓쳤던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해석한다.
과학자들의 설명이 100% 완벽하지 않다. 이 점은 그들 스스로도 잘 안다. “이들은 논리적 일관성, 설득력, 경험적 사실들과의 부합을 기준으로 자신들의 생각을 검증한다. 누구의 생각이라도 도전받을 수 있으며, 그와 같은 도전을 거치면서 이해와 지식은 쌓여 나간다고 믿는다.”
이 책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학문의 영역은 물론 지적 권위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 그 자유로운 정신이야말로 지식과 진리에 다가서는 가장 큰 무기다. 소통을 뛰어넘는 통합의 메시지. 과학 개척자들은 그 길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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