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의 임신을 다룬 미국 영화 ‘주노’ 얘기를 들었을 때 한국 영화 ‘제니, 주노’(2005년)를 떠올렸다. 다른 이도 그랬는지, 인터넷에선 ‘주노’가 ‘제니, 주노’를 표절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소재가 같고 공교롭게 제목까지 비슷하지만 ‘제니, 주노’의 주노는 남자 주인공 이름 ‘준호’를 소리 나는 대로 쓴 것이고 ‘주노’의 여자 주인공 주노(Juno)는 결혼과 출산의 여신 헤라의 로마식 이름이다.
‘제니, 주노’는 흥행에 실패(29만 명)하고 ‘철없는 영화’라고 욕을 먹었다. ‘주노’는 미국에선 흥행과 비평에서 성공했으나 한국에서는 7만여 명이 봤다. 10대의 임신이라는 소재가 한국에선 흥행이 될 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래도 이 칙칙한 소재를 ‘오버’하지 않고 경쾌하게 다룬 ‘주노’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15세 여중생의 임신 이야기인 ‘제니, 주노’가 어른이 되고 싶은 청소년 커플의 ‘판타지’였다면 16세 여고생의 임신을 소재로 한 ‘주노’는 현실적이고 덤덤한 드라마다.
두 영화 모두 임신 테스트를 하는 소녀로부터 시작된다. 전교 5등에 반장인 모범생 재인(‘제니, 주노’ 여주인공)은 임신을 알고 “나 사랑해?” 하며 남자 친구의 마음을 확인하고 “나 없이 살 수 있어?” 하고 징징댄다. 주노는 잠시 좌절하지만 남자 친구에게 “너랑 잔 건 미안해, 네가 그러자고 한 것도 아닌데” 하곤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 부모에게 이해를 구한다. 10대로서는 재인이 더 일반적인 모습이지만 영화 캐릭터로서의 매력은 주노에 비해 떨어진다.
재인과 준호 친구들은 학교에서 둘의 결혼식을 올려 준다. 반면 주노는 남들이 놀리거나 말거나 배 불쑥 내밀고 ‘살아있는 교훈’ 취급을 받으면서 학교에 다닌다.
두 영화는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출산을 선택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재인과 준호는 ‘낙태 비디오’를 함께 보고 “엄마가 되는 기분이 뭔지 조금은 알 것 같아”(재인) “좋은 남자가 되도록 노력할게”(준호)라고 말한다. 믿을 수 없이 급격하게도 조숙해진다. 두 아이들은 사랑의 힘만 믿고 대책도 없이 아이를 낳는다.
주노의 선택은 오히려 현실적이다. 아기를 키울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입양을 결심한다. 이후 여러 과정을 겪으면서 주노는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되고 성장한다. 이런 주노에 대해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영화평론가 심영섭 씨는 ‘주노’에 ‘혈연에 대한 고집과 완벽한 가정에 대한 환상이 없음’을 주목했다. 이 영화에는 재혼 가정도, 편부모 가정도 있고 입양 문제도 있다. 무엇보다 ‘태어날 아이에게 좋은 환경’에 대한 고민이 있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