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지도부외부인사들이 많은 공천심사위원회에 ‘허를 찔린’ 통합민주당 손학규(왼쪽) 박상천 공동대표가 5일 밤 국회 당 대표실에서 공천 기준 관련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었으나 뾰족한 대책이 없어 고심하고 있다. 창문에 쳐진 블라인드 틈 사이로 사진을 찍어 상태가 좋지 않다. 전영한 기자
단호한 공심위통합민주당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왼쪽)은 5일 계획에 없던 공천심사위원회의를 긴급 소집해 ‘금고형 이상을 받은 자에 대한 공천 일괄 배제’ 기준을 표결에 부쳐 확정했다. 박 위원장이 이날 오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당사에서 공심위를 주재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민주당 공심위 ‘금고형 이상 공천 배제’ 확정
정치인의 노련함이 비(非)정치인의 뚝심에 무릎을 꿇었다.
통합민주당 지도부의 제동에도 불구하고 공천심사위원회가 5일 ‘금고(禁錮) 이상 형 확정자’에 대한 예외 없는 공천 배제 원칙을 최종 확정하자 민주당은 대혼란에 빠졌다.
지도부는 “이렇게 밀어붙일 줄은 몰랐다” “민주적 절차 위반이다”라며 반발했지만 자기가 놓은 덫에 걸리고 말았다. 당헌·당규상 공심위의 결정을 뒤집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공심위는 새 기준에 따라 이르면 6일부터 공천 대상자를 발표한다.
▽공천 기준 강행 배경=공심위는 당초 소속 위원 12명 전원의 합의를 통해 공천 기준을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표결로 가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최고위원회의 권고도 명분과 원칙을 감안해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내비쳤다. 이 때문에 4일 공천 기준을 마련하고도 최고위와의 협상 가능성을 열어 뒀다.
하지만 5일 오후 박재승 공심위원장은 일정에 없었던 회의를 소집하고 표결을 통해 공천 기준을 확정해 버렸다.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표결 강행 사실을 몰랐다. 일부 선의의 피해자에 대해선 개별심사를 해 주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 줄 알았다”며 분개했다.
이에 대해 박경철 공심위 홍보간사는 “최고위의 권고 내용에 대해 의견을 듣는 자리를 가졌다. (하지만) 절차상 최고위는 공심위 의결에 대한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선의의 피해자에 대해서는 “한 마리 억울한 양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대의멸친(大義滅親·국가의 대의를 위해서는 부모 형제도 돌아보지 않음)의 관점이다. 올림픽에서는 도핑테스트에 걸리면 감기약이라도 출전이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박 위원장이 본인을 추천한 손학규 공동대표의 권고까지 뿌리치며 공천 기준을 밀어붙인 이유는 무엇보다 정치 논리에 기울다 보면 공천 개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공심위 관계자는 “예외를 인정하기 시작하면 모든 게 어그러진다”고 말했다.
공천 심사가 지연되면서 선거운동에 차질을 빚는다는 예비 후보들의 호소도 공심위에 명분을 얹어 줬다.
이번 공천 배제 기준은 금고 이상 형 확정자에게 적용되지만 민주화운동과 관련됐다면 예외로 인정된다.
또 배기선 의원처럼 아직 형이 최종 확정되지 않은 경우는 공천심사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하지만 박 간사는 “심의 과정에서 배제될 수도 있다”고 말해 여지를 남겼다.
▽孫대표 지도력도 타격=공심위의 공천 기준 강행 소식이 알려지자 최고위원들은 이날 오후 늦게 긴급회의를 열고 대책을 숙의했다. 하지만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당 안팎에서는 공심위 해산이라는 카드가 거론되기도 했지만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민심 이반이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이번 공심위의 결정으로 손 대표의 지도력도 타격을 입게 됐다. 이틀 동안 요구했던 예외규정이 거부된 데다 그가 박 위원장을 끌어들인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이번 결정으로 공천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높은 인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홍업 의원과 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 신계륜 사무총장,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 씨, 이용희 국회 부의장, 신건 전 국가정보원장, 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 이호웅 김민석 설훈 이정일 전 의원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전영한 기자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전영한 기자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전영한 기자
■ ‘선의의 피해자’ 논란
통합민주당 지도부가 보호되어야 한다고 거론한 ‘선의의 피해자’는 누구를 말하는 걸까.
5일 당에서 거론된 대상자는 조금씩 달랐지만, 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과 신계륜 사무총장은 대체로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이 전 장관은 2002년 대선 당시 여러 기업체에서 32억 원을 받아 당 선거비용으로 썼다가 영수증 없는 불법자금이라는 이유로 2004년 1월 구속됐다.
최고위원들은 이 전 장관이 △개인 착복을 하지 않았으며 △그 자리(선대위 총무본부장)에 있었으면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그러나 A 공심위원은 “32억 원이란 거액을 받은 정치인이 공천을 받는다면 이를 국민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신 총장은 2002년 12월 대부업체로부터 3억 원의 개인 정치자금을 받았다. 그는 12월 5000만 원, 이듬해 1월 5000만 원을 받는 형식으로 영수증을 2장 발급했고, 2억 원은 돌려줬다. 그러나 당시 정치자금법은 ‘1차례 받은 돈을 2개년에 걸쳐 받은 것으로 영수증을 나눠 써 주는 것은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또 신 총장이 받은 1억 원은 당을 위한 선거자금이 아니었다.
당 지도부는 신 총장이 당내 386세대, 호남 정치세력, 재야그룹을 잇는 허리 역할을 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피해자’라며 구제될 때 향후 나쁜 선례를 남긴다는 점은 고민거리다. 한 당직자는 “불법 정치자금을 받고, 선거 승리로 ‘과실’을 맛보고, 설사 검찰 수사에 적발된 뒤 실형을 살더라도, 당시로선 ‘어쩔 수 없었다’는 논리를 펴면 어떻게 하느냐”고 반문했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