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열린 빙벽 등반 월드컵에서 우승한 신윤선. 전문가들은 그를 타고난 스포츠 클라이머라고 평가한다. 2006년 노스페이스배 대회 때 빙벽을 타는 모습(위)과 자신감 넘치는 ‘생얼’ 포즈에서 클라이밍에 대한 고집이 느껴진다. 홍진환 기자·사진 제공 사람과 산
눈썹 위까지 내려 쓴 진녹색 비니와 빨간색 다운재킷 차림에 배낭을 메고 인터뷰 장소에 나타난 신윤선(28·노스페이스, 대구파워클라이밍센타)은 인터뷰 내내 무표정이었다. 얼굴도 화장기 하나 없는 그야말로 ‘생얼’. 인터뷰는 이런 식이었다.
“어떻게 스포츠 클라이밍을 시작하게 됐나.”
“그냥.”
“어떤 계기로 하게 됐느냐는 말이다.”
“그냥 재밌을 것 같았다.”
“그 전에 검도를 했다고? 그건 왜 했나?”
“…. 유산소운동으로 좋은 것 같아서.”
그는 지난달 11일 루마니아 부슈테니에서 열린 국제산악연맹(UIAA) 빙벽 등반 월드컵 2차 대회 난도(고난도 코스를 누가 더 높게 오르는지를 겨루는 경기) 부문에서 깜짝 우승했다. UIAA 주최의 국제 스포츠 클라이밍 대회에서 한국인이 우승하기는 처음이다. 스포츠 클라이밍 경력 5년도 안 된 신참이 세계적인 강자들을 모두 눌렀다. 월드컵 출전도 그때가 겨우 두 번째였다.
그런데 이어 스위스에서 열린 월드컵 3차 대회에선 예선 성적 상위 8명이 겨루는 결선에서 꼴찌였다. 부진 이유는 간단했다. 힘이 너무 넘쳤다는 것.
“예선을 치르며 다른 선수들을 보니까 실수만 안 하면 우승하겠다 싶었다. 첫 동작을 조심스럽게 했어야 하는데 그만 힘이 넘쳐 피켈을 확 잡아끌다 미끄러져 버렸다.”
지난주 일본에서 열린 빙벽 대회에서 그는 또 우승을 하고 돌아왔다. “대회 수준이 낮았다”고 그는 짧게 답했다.
그를 오랫동안 지켜봤던 대구파워클라이밍센타 지도자 이정옥(37) 씨는 그를 ‘노력파’로 정의했지만 그의 이력을 보면 동의하기 쉽지 않다.
암벽 등반을 시작한 지 1년도 안 돼 빙벽 등반을 시작했고 빙벽을 시작한 지 1년 뒤인 2005년 초 주변 사람들에게 떠밀리다시피 출전한 국내 대회에서 준우승을 했다. 그 다음 대회 때는 우승. 장비도 없어 대회장에서 빌려 썼다. 대회마다 상금을 타서 하나씩 장비를 마련했다. 신윤선은 그렇게 덜컥 ‘빙벽 1인자’가 됐다. 스폰서가 생겼고 그대로 직업이 됐다. 한 선수가 빙벽과 암벽을 모두 잘하기는 어렵다. 쓰는 근육과 기술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암벽 부문에서도 국내 2위에 올라 있다. 온통 굳은살로 덮인 그의 손바닥만이 그간의 노력을 짐작하게 할 뿐이다.
지금 그의 관심사는 온통 클라이밍뿐이다. 1999년에 대학(경일대)에 입학했는데 아직 졸업을 못했다. 2003년 스포츠 클라이밍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휴학 중이다.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하면 골치 아플 것 같아서”가 그 이유다.
남자 친구? 당연히 없다. 역시 답은 “골치 아플 것 같아서”다.
:신윤선은 누구?:
▽1980년 4월 15일 대구 출생 ▽출신교=대구 수성초-풍기중-남산여고-경일대(휴학 중) ▽체격=170cm, 56kg ▽가족=1남 1녀 중 맏딸 ▽별명=왕발(손발이 커서) ▽스포츠 클라이밍을 계속 하는 이유=“클라이밍하는 내 모습이 너무 멋있게 느껴져서” ▽주요 경력 △2006년: 오투월드 아이스클라이밍대회 난도 1위 △2007년: 제11회 설악국제빙벽대회 난도 1위, 속도 1위 △2008년: UIAA 빙벽 등반 월드컵 2차 대회 난도 1위, 3차 대회 난도 8위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