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10년 동안이나 사랑했던 남자 친구와 결별하게 되었습니다. 서로가 한 몸이라고 생각했던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던 남자에게 새로운 여자 친구가 생긴 것입니다. 그 남자가 뭉개 버리고 떠난 빈자리에는 허무의 큰 덩어리가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그와 헤어짐으로써 정서적 파산을 겪은 그녀는 예견치 못했던 착시현상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사물이, 한 몸 아닌 반쪽 몸으로만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길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도 반쪽으로만 보였고, 보름달이 떴다 해도 조각달로 보였습니다. 하늘의 비행기도 한쪽 날개로만 날았고, 바다의 여객선도 반쪽만 건조된 것이었습니다. 키가 껑충했던 세상의 사내들은 모두 난쟁이처럼 보였고, 일흔 살 먹은 노인도 그녀에겐 서른다섯의 중년으로 보였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버릇없는 여자로 눈총을 받게 되었습니다.
300쪽의 책을 읽을 때도 150쪽만 읽고 던져 버렸습니다. 넘치는 분량은 백지로만 보였기 때문입니다. 여행을 가더라도 목적지의 반만 가면 돌아와 버렸고, 직장에 출근해서도 오전 근무만 하고 집으로 돌아와 버렸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겐 낮 12시가 그녀에겐 해가 지는 때였습니다. 진행하던 모든 일은 중도에서 결말이 났는데, 그녀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끊임없이 자신에게 나는 반쪽이라는 주문을 외워 최면을 걸었던 결과 이젠 받침이 삭제된 문자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를테면 “나는 반쪽 인생이다”라고 할 때 그녀는 “나느 바쪼 이새이다”라고 발음하는 것입니다. 간혹 그녀의 매혹적인 미모에 눈길을 뺏긴 사내들이 접근하여 사귈 것을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반쪽만 보이는 난쟁이와 사귀거나 결혼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때마다 가차 없이 퇴짜를 놓아 버렸습니다.
그녀는 외곬으로만 빠져 다른 난쟁이들의 조언이나 충고 따위는 경멸했습니다. 자기 생각만이 옳고 자기가 가진 가치관만이 지고지순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남자 친구와 헤어지기 전에 보았던 아름다운 세상은 이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반쪽 몸 인생을 철저하게 믿었던 나머지 90세로 타고난 수명을 반 토막 내어 45세라는 억울한 나이에 횡단보도를 반만 건너다가 죽음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그녀의 짧은 인생 역정에는 그녀 스스로를 함정에 빠뜨려 버린 중대한 과오가 있었습니다. 그녀를 제외한 모든 사람의 눈에는 그녀가 온전한 한 몸 인생으로 보였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번이었던 난쟁이들의 배려와 충고조차도 그녀는 외면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김주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