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를 떼놓고 선거를 얘기할 수 없다. 이번 미국 대통령 후보 경선도 예외는 아니다. 언론의 감시 기능과 정파성에 관련한 논쟁은 선거의 단골 메뉴다. 이번에는 공화당 후보인 존 매케인에 대한 뉴욕타임스의 폭로성 보도가 논란거리였다. 이 과정에서 경쟁사 월스트리트저널의 사주인 루퍼트 머독과 매케인의 친분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언론사 간 갈등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신문사뿐 아니라 케이블 뉴스 전문 채널 간의 경쟁도 볼 만하다.
공화당 지지 성향인 폭스뉴스에 비해 절반 정도의 시청률을 보이던 CNN이 민주당 경선 열기에 힘입어 폭스뉴스를 많이 따라잡았다. 또 ‘마법의 벽(Magic Wall)’으로 불리는 CNN의 새로운 뉴스 전달 방식도 화제다. 기존의 컴퓨터 그래픽 기술과는 달리, TV 뉴스 스튜디오의 미래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보도의 공정성도 쟁점이다. 공화당보다는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보다는 버락 오바마 위주의 보도라는 비판이 많다.
이번 경선의 많은 이슈 중에서 메인 테마는 단연 오바마 열풍이다. ‘오바마 컬트’, ‘오바마 강림 신드롬(Obama Comedown Syndrome)’, ‘오바마니아(Obamania)’ 등 관련 신조어도 넘쳐난다.
오바마 열기를 인터넷과 연관지어 말하는 사람이 많다. 개미들의 힘, 롱테일의 승리라고도 한다. 사이트 방문자 수나 관련 블로그 수, 인터넷 모금 액수 등 여러 조사결과를 볼 때 오바마가 인터넷에서 여타 후보를 압도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인터넷에 기반한 오바마 열풍은 기존 정당 중심의 정치 구조에 대한 경고로 읽힐 만하다.
정당을 떠난 시민들이 모이는 곳이 인터넷이다. 인터넷 카페와 같은 소규모 전자 토론 공간에서는 다양한 의견의 결집이 가능하다. 이합집산도 쉽다. 기존 정당이 작은 머리 큰 몸집을 가진 공룡이라면 이슈 중심, 사람 중심의 카페 정당은 재빠르고 환경 적응력이 높은 포유류다. 좌우나 보수-혁신 등 이념에 기초해 단선적 갈등을 보이는 기존 정당들이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세상은 인터넷의 수많은 카페처럼 전문화, 차별화, 탈중심화되어 가고 있다. 가치, 취향, 소비에서 보편적이란 것이 사라지고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다수 의견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 시대다.
정치는 ‘우리’라는 의식을 만드는 작업이다. 그 중심에 미디어가 있다. 현대 사회의 갈등은 카를 마르크스가 설명한 것보다 훨씬 다층적이고 복합적이다. 단순하고 전투적이었던 갈등 구조가 복잡하면서도 연대를 필요로 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새로운 미디어를 이용해 다양한 사람들을 ‘우리’로 묶어내는 오바마의 ‘소셜 네트워킹’ 능력이 남다르게 보인다. 그래서 이번 미국 선거가 흥미롭다.
안민호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