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 바쁜 외교부 간부들한미동맹 강화를 강조해 온 이명박 대통령이 11일 외교통상부를 직접 방문해 업무보고를 들었다. 실용외교를 강조한 이 대통령의 모두발언을 외교부 간부들이 메모를 해 가며 경청하고 있다. 이종승 기자
■ 李대통령, 지난 정권 외교정책 강력 비판
자주파-동맹파 갈등속 제역할 못한 것 지적
“北인권은 인류 보편적 기준 갖고 얘기해야
대북 정책도 실용… 셔틀외교 못할 이유없어”
이명박 대통령은 11일 외교통상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창조적 실용주의’를 기반으로 한 대외(對外)정책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문하면서 한미동맹 북핵문제 등과 관련해 이전 정부의 외교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또 이 대통령은 북한 인권문제는 인류 보편적 가치로서 침묵할 수 없는 문제임을 강조하면서도 북한에 대해 적극적인 대화 협력 의지를 천명했다. 최근 일부 매체를 통해 ‘독재정권의 후예’ ‘보수집권 세력’ 등으로 새 정부를 비난하기 시작한 북측의 대응이 주목되는 대목이다.
▽실용주의와 동떨어진 외교정책 난맥상 질타=이 대통령은 먼저 “우리가 과거에 과연 얼마만큼 창의적, 실용적 외교를 해 왔느냐”면서 “세계가 변하는 속도에 한걸음이라도 앞서 변화를 추구해야 동북아에서 한국이라는 나라가 발전해 갈 수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이 대통령은 “남북 관련 현안과 4강(强) 외교 등에서 몇 가지 지적하고자 한다”면서 “저는 외교부가 지난 기간 한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만족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불만이 좀 있다고 분명히 이야기한다”고 톤을 높였다.
이 대통령은 6자회담과 대미 관계에서 외교부가 제 역할을 못한 이유에 대해 “외교부 자체가(자체에)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여러 갈래로 의견을 달리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이념’과 ‘코드’를 앞세운 이른바 ‘자주파’와 친미 성향 ‘동맹파’의 갈등 속에 전통적인 한미동맹 관계가 약화되고 일본과의 관계와 6자회담에서의 역할도 약화된 점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 대통령은 국익에 바탕한 실용외교를 강조하면서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지혜로운 외교를 해야 한다. 미국 일본 중국 등 강대국 외교와는 다르다”면서 “가장 슬기로운 외교는 미국과 한국의 국익을 맞추는 것이다”고 말했다.
또 이 대통령은 “과거 역사에서 보듯 인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한국의 운명을 좌우했다. 21세기는 다자간 협력체계로 나가고 있다”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해서는 외교부가 훌륭하게 협상을 해 왔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여러분에 대한 변화를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남북관계 ‘민족’보다 ‘국제관계’틀 속에서 풀어야=이 대통령은 남북 관계에 대해서도 ‘실용주의’ 원칙을 적용해 ‘민족’이라는 특수성보다는 ‘국제관계’라는 보편적 틀 속에서 풀어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이 대통령은 “북한은 통일해야 될 하나의 조국임에 틀림없다. 북한 주민을 매우 사랑하며,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연구해야 한다”면서 “우리가 인권 문제를 논할 때는 대북 전략적 측면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행복 기준을 갖고 얘기하는 것이다. 사람은 어느 곳에서 태어나든 최소한의 행복추구권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이 대통령은 “우리는 북한과 대치해 남북 간 화해에 손상이 가게 할 생각은 전혀 없으며, 어느 때보다 남북이 화해 화합하는 것을 바라고 있다”면서 “북한이 좀 더 잘살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바라고 남의 나라에 손 벌리지 않고도 이른 시간 안에 자립하길 원한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그렇게 돼야(북한이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남북 통일도 앞당길 수 있다”면서 “언제든 마음의 문을 열고 남북 관계에 도움 되는 방향으로 대화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대남전략, 대북전략 이런 구시대적 발상은 안 된다”며 ‘새로운 사고’를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일본과 ‘셔틀외교’를 하는데 북한과 못할 것이 뭐 있느냐. 남은 북에 대해, 북은 남에 대해 주권을 침해해서는 안 되며, 서로 존중하면서 마음의 문을 열고 대화해야 한다”면서 “통일부도 관계되지만 외교부가 창조적 실용주의를 중심으로 새로운 자세로 대화할 수 있는 준비를 해 달라”고 주문했다.
박성원 기자 sw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