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떠나갔지만, 그의 음악은 ‘광화문 네거리’를 다시 찾는다. 최근 대장암으로 별세한 작곡가 이영훈을 추모하는 헌정공연이 27일 오후 8시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다. 총연출을 맡은 가수 이문세를 비롯해 정훈희, 김현철, 김장훈, 전제덕, 서영은, 성시경, ‘SG워너비’의 김진호 등이 출연할 예정. 이들이 노래하는 ‘이영훈 연가(戀歌)’를 들었다. ①첫 만남의 기억 ②노래에 얽힌 추억 ③그의 음악은 ○○○이다.》
■ 김장훈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을 때 인정해준 분
①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을 때 유일하게 날 인정해준 사람이에요. 1993년 어느 날 제게 곡을 주고 싶다며 듀엣곡인 ‘어제 속으로’를 주셨죠. ‘당신 같은 분이 왜 저를…’이라고 물었더니 제 목소리가 참 좋대요. 그게 단 한 번의 만남이었어요. ②옛사랑=눈물나잖아요. ‘남들도 모르게 서성이다 울었지’ 제가 부르면 문세 형보다 잘 부를 자신 있는데…. ③그의 음악은 ‘지음’이다=내가 어려울 때 날 알아봐줬던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 SG워너비 김진호
작곡으로 일기를 쓰셨다니…
①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②광화문 연가=광화문은 제게 기쁜 추억이 더 많은 곳이지만,이영훈 작곡가 하면 이 노래 아닌가요. ③그의 음악은 ‘일기’다=요즘 음악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노래가 없는 것 같아요. 예전 기사에서 이 선배는 곡으로 일기를 쓴다는 것을 봤어요. 유행을 좇아가는 요즘 음악을 들으면 선배님이 많이 안타까워하실 거예요.
■ 김현철
마흔셋에도 이런 감성을 가질 수 있을까
①1989년 서울스튜디오 녹음실에서 처음 인사했어요. 노래로 들을 때는 마르고 날카로울 줄 알았어요. 실제로 보니 어느 정도 체격이 있으시더라고요. 그 후 문세 형 음반에 프로듀서로 참여하며 술 많이 마셨죠. ②슬픈 사랑의 노래=이 곡을 편곡하면서 알았죠. 마흔셋에도 이런 감성을 가질 수 있구나, 놀라고 또 놀란 곡. ③그의 음악은 ‘음악이 아니다’=딱 한 권의 책, 잘 짜인 작품을 대하는 느낌. 멜로디만큼 가사에 대한 철학을 가졌던 그는 작가입니다.
■ 서영은
달콤 쌉싸래 다크 초콜릿 같은 그의 노래
①지난해 KBS ‘러브레터’ 대기실. 문 앞에 ‘이영훈’이라는 이름 석 자가 적혀 있었는데 너무 기쁜 나머지 불쑥 들어가 인사했더랬죠. 그랬더니 ‘내 노래를 다시 불러줘서 고맙다’고 했어요. ②깊은 밤을 날아서=서정적이고 맑은 노래와 달리 신나는 노래도 좋아요. ③그의 음악은 ‘다크 초콜릿’이다=달콤하면서도 씁쓸한 그의 사랑 노래를 들으면 다크 초콜릿이 생각나요.
■ 성시경
대가들이 늘 그렇듯 신사다우셨어요
①작곡가 김형석 씨를 통해 몇 번 봤어요. 대가(大家)들이 그렇듯 신사답고 후배들을 편안하게 대해 주었어요. ③그의 음악은 ‘그리움’이다=이제는 닿을 수 없는 사람이 됐잖아요. 그의 음악은 아날로그와 옛 음악이 흐르던,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을 뜻하는 것 같아요.
■ 전제덕
차분하고 따스한 느낌
①2년 전 5월 녹번동 스튜디오에서 만났어요. 노래를 들으면 곡 쓰는 사람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그려지는데 실제로 만나니 노래처럼 차분하고 따스했어요. ②기쁨의 날들=리메이크 음반인 ‘옛사랑 프로젝트’에서 제게 이 곡을 주셨어요. 하모니카 소리가 좋다며 절 염두에 두고 이 곡을 지으셨대요. ③그의 음악은 ‘한국인의 감수성’이다=1980년대 사회가 어지러울 때 그의 노래는 한(恨)의 정서가 아닌 아름다운 감수성을 표현했던 게 아닐까요.
■ 정훈희
그는 떠나도 그의 노래는 내 곁에 남아
①재작년 ‘옛사랑’ 음반을 만들면서 만났어요. 어릴 적 나를 좋아했대요. 16세 때 나처럼 세계 가요제에 나가보는 게 꿈이었대요. 제 40주년 음반에 작곡가로 참여하기로 했는데 그렇게 떠나버렸네요. ②기억이란 사랑보다=몇 년 전 한 특집에 함께 무대에 올라 이 곡을 엔딩곡으로 불렀어요. ③그의 음악은 ‘남아 있다’=장삿속으로 음악 하는 사람들의 노래는 그냥 흘러가요. 남지 않아요. 하지만 영훈 씨처럼 자신의 음악세계를 추구한 사람의 음악은 이렇게 마음에 늘 남아있어요.
음악을 한다는 건…
내가 써 왔던 300여 곡의 작품이 있는데
그중 100여 곡은 습작이었고 120곡 정도만이 발표된 곡들입니다.
그런데 그 발표곡 중에서도 대중이 사랑하는 곡은
절반쯤밖엔 안 될 거예요.
무슨 소린가 하면 내가 좋아서 했다는 것입니다.
나 자신도 오늘 내가 피아노 앞에 앉아서 어떤 곡이 나올지
전혀 알 수 없으니까요. 돈과도 상관없어요.
누가 내게 10억 원짜리 곡을 써 달라 한데도
그 가치의 곡이 나올지 모른다는 거지요.
내가 만족하는 음악이 나를 이 길로 이끈 것이고
작곡가로 불려질 자격을 준 것입니다.
결국 누구도 내 음악을 판단할 수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평가는 받겠지요?^^
―2005년 어느 날 이영훈이 후배 가수 박소연에게 남긴 편지 중에서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