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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이병권]문화산업,정부가 나서 ‘황금알 거위’로 키우자

입력 | 2008-03-14 03:00:00


국보 1호인 숭례문이 불에 타서 무너졌다. 600여 년간 온갖 침략과 참화 속에서도 수도 서울을 지켜 온 우리 문화의 상징적 존재가 허망하게 허물어졌다. 문화예술에 대한 보존과 관리의식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개탄스러운 사건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얻어야 할 가장 큰 교훈은 아직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낮다는 점이고, 이런 인식 수준으로는 날로 치열해지는 세계 각국의 문화경쟁에서 우리가 낄 자리는 없다는 사실이다.

문화예술을 발전시키는 것은 이제 품위를 지키거나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됐으니 여유를 가져보자는 식의 담론적 수준을 넘어서는 절박한 경제적 이유가 있다. 세계 각국과 유수의 기업은 이제 예술이 갖고 있는 창의성과 다양성에 주목하고 이로부터 다양한 경제적 부가가치를 얻기 위해 분석 및 투자하고 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유럽의 변방으로 밀려날 것 같던 영국은 이제 유럽 문화예술의 심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유럽 금융의 중심지가 독일 프랑크푸르트가 아니라 런던이 된 이유도 런던이 가진 문화예술의 힘 때문이다. 영국의 문화산업이라 할 창조산업(Creative Industry)은 이미 국내총생산(GDP)의 8%를 넘어선다. 영국의 대표산업인 금융산업을 능가하는 수준이다. 이런 영국의 문화산업은 20여 년 전 마거릿 대처 총리 때부터 뿌린 투자에서 기인한다.

대처 정부는 예술분야의 정부 지원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만들었다. 공공재원과 민간재원의 역할과 협력관계에 관한 것이다. 공공재원은 최대한 문화예술 전반의 발전을 위한 구조적 개혁과 체계를 갖추는 데 집중됐고, 개별 예술에 대한 지원은 기업의 참여를 최대한 활성화하는 방식이 도입됐다. 오늘날 ‘뉴 파트너스’라고 불리는 ‘기업과 예술의 만남’ 프로젝트는 일종의 매칭펀드로 예술단체에 대한 기업의 참여를 활성화하고 예술단체의 자생력 강화를 위한 것이다. 23년간 유지되고 있는 대표적인 예술지원정책이다. 지난해까지 영국 정부는 매년 50억 원의 매칭펀드를 제공하고, 예술단체에 제공되는 기업투자금은 매년 150억 원을 넘는다. 얼핏 큰돈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매년 200억 원이 넘는 재원이 예술단체에 제공되고 또 기업들과 강력한 파트너십을 형성해 기업 발전에 기여하는 효과를 생각해보면 그 효과는 금액으로 환산하기 어렵다.

가까운 중국은 어떤가.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세계적인 건축가들을 동원해 주요 경기장을 가장 아름다운 상징물로 만들고 있다. 또 버려진 공장 터를 미술가들의 작업실로 전환하는 등 예술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이미 우리를 앞지른다. 중국의 젊은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그들의 작품가격도 천정부지로 뛰고, 중국문화와 예술세계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도 역시 고양되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작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각종 비리와 부정이 얽힌 예술계의 문제들에 대해 제도적 해결책은 제시되고 있는가. 국가의 경제성장 동력으로서 문화적 국부(國富) 창출을 위한 정책은 준비돼 있는가. 불탄 숭례문을 재건하는 것 못지않게 창조산업으로서 21세기 국부를 창출할 문화예술정책에 대해 새 정부의 관심과 역할을 기대해본다.

이병권 한국메세나협의회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