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을 꿰고 만선기 꼽으며 채비했던/무수한 사연들이 출항했다/은빛 돛대를 세우고 귀환을 약속하는 갈매기 떼/우루루 비상하는/여기 구룡포.’
‘구룡포 시인’으로 불리는 권선희(43·여) 씨는 2007년 펴낸 시집 ‘구룡포로 간다’에서 구룡포를 이렇게 노래했다.
경북 포항 영일만의 호미곶을 따라 남쪽으로 10여 km 내려가면 만나는 구룡포(九龍浦). 전설에 따르면 신라 진흥왕 때 동해의 용 아홉 마리가 하늘로 올라간 포구라는 뜻에서 구룡포라고 명명됐다는 것.
1923년 방파제를 쌓고 부두를 만든 이후 지금까지 동해의 어업전진기지 역할을 해 왔던 구룡포가 최근 다시 ‘용틀임’을 하고 있다.
우선 구룡포의 특산물인 과메기가 전국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예전에 구룡포 주민들이 밥반찬으로, 간식으로 먹곤 했던 과메기가 ‘전국구 식품’으로 발돋움한 것이다.
구룡포 과메기의 산증인인 구룡포과메기영어조합법인 정재덕(68) 회장은 13일 “과메기 덕분에 구룡포라는 이름도 상당히 알려졌다”며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김치와 같은 한국의 대표음식이 되도록 품질을 높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구룡포 대게는 아직도 ‘억울한’ 편이다. 구룡포의 경우 경북 동해안에서 위판되는 대게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지만 인지도에서는 영덕이나 울진 대게에 크게 밀리기 때문.
구룡포 근해자망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구룡포항을 통해 위판된 대게는 1522t으로 경북 전체 위판량 2674t의 57%를 차지했다.
구룡포 근해자망협회장으로 30년째 대게를 잡는 김경호(67) 씨는 “대게 어획량이 많아 타 지역보다 저렴하게 대게를 맛볼 수 있다”며 “앞으로 구룡포가 전국 최대의 대게 산지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독자적인 브랜드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포항시는 일제강점기 때인 1930년대 전후에 형성된 일본식 가옥 200여 채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구룡포 읍내에는 당시 지은 일본인 집 200여 채가 남아 있다. 당시 구룡포가 어업항으로 만들어지면서 일본인이 집단 거주한 흔적이다. 이들 집은 ‘적국의 재산’이라는 뜻에서 ‘적산(敵産)가옥’으로 불린다.
일본 공영방송인 NHK는 12일 포항시를 방문해 적산가옥의 보존과 관광지 조성 계획에 큰 관심을 보였다.
포항시 관계자는 “일제강점기의 흔적을 무조건 없애기보다는 오히려 잘 보존해 다시는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의미 있다”고 말했다.
구룡포 주민들의 기대감도 높다. 28개 마을로 구성된 구룡포읍은 10년 전에는 인구가 3만8000여 명이었으나 지금은 1만2000여 명으로 크게 줄었다.
김재섭(59) 구룡포읍장은 “그동안 구룡포가 활력을 잃었는데 과메기 등을 계기로 조금씩 살아나는 느낌”이라며 “유서 깊은 우리 지역에 주민과 관광객이 붐빌 수 있도록 주민들의 힘을 모으겠다”고 밝혔다.
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