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북-미(北-美)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그제 제네바에서 만나 북의 핵 프로그램 신고 문제를 협의했다. 신고는 지난 연말에 벌써 끝났어야 할 과정이다. 지난해 10월 3일 6자회담에서 북은 “연내에 영변 등 3개 핵시설을 불능화하고 핵 프로그램 신고까지 마치겠다”고 약속했다. 그에 맞춰 미국은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 북을 빼주고, 한국 등 6자회담 당사국들은 100만 t의 중유를 북에 지원키로 했다. 그러나 5개월이 넘도록 신고는 이행되지 않고 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핵무기와 플루토늄은 물론이고 농축우라늄 등 북이 가진 핵 프로그램의 전모를 알아야 한다. 작년 말엔 북이 중동의 시리아에 핵 기술을 유출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북은 아직도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의 존재와 시리아 커넥션을 부인하고 있다. 힐 차관보는 회담 후 “합의는 없었지만 진전이 있었다”고 했다. 그 진전이 어떤 것인지 모르나 북핵의 완전 신고가 전제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힐 차관보는 김 부상을 만나기 전에 “3월은 중요한 달이다. 이달 안에 핵 신고가 마무리되지 않으면 전체 프로세스가 흔들릴 수 있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미국 대선 일정을 감안해 5, 6월까지 가시적 성과가 나오려면 이 시한이 지켜져야 한다. 그렇다고 일각의 우려대로 플루토늄과 UEP를 분리해, UEP 신고에는 유연성을 발휘하는 방향으로 문제가 정리돼선 곤란하다. 이런 식으로 자꾸 양보하니까 북이 무슨 일이든 버티고 보는 것이다.
북한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 이번에도 미국에 새 행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그럭저럭 시간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는 그게 통했을지 모르나 한미동맹의 회복을 선언한 이명박 정부에선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핵 문제의 해결 없이 본격적인 대북지원과 남북관계의 호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