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의 18대 총선 공천 작업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어제까지 245개 선거구 중 한나라당은 224곳, 민주당은 103곳에 후보자를 확정 또는 내정했다. 영남과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중진과 실력자가 상당수 탈락하고 현역 의원의 탈락 비율도 높아 물갈이 정도가 큰 편이다.
그러나 누가 탈락했는지, 그들이 어떤 반발을 보이는지에만 정치권과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다. 정작 18대 국회를 구성할 후보군인 공천 승자(勝者)들이 어떤 자질과 어떤 국가관을 지닌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분위기다.
공천에서 대폭 물갈이를 한다고 해서 정치가 저절로 좋아지고 국가가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역대 총선 때마다 각 정당이 앞 다퉈 공천 물갈이에 나섰고 그 결과 초선의원 당선 비율이 13대 56.5%, 14대 39.8%, 15대 45.8%, 16대 40.7%, 17대 56.5%에 이르렀지만 정치의 품질이 실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정치 수준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력 수준에 훨씬 못 미치고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하위권이다.
물갈이 공천은 ‘빼내는 물’ 못지않게 어떤 물을 새로 채워 넣는지가 중요하다. 그동안 총선 때마다 되풀이된 물갈이에도 불구하고 정치판이 달라지지 않은 것은 정치권이 물갈이를 국민의 눈요깃거리 정도로만 활용했기 때문이다. 이번 공천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실망스럽다.
한나라당은 정체성이 불분명하고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은 일부 인물을 공천 대상에 포함시킨 데다 계파별 나눠 먹기식 공천 행태를 보였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에 비해 현역 의원의 물갈이 폭이 상대적으로 적다. 그나마 72명의 현역 의원 공천자 중에 노무현 정권의 국정 실패에 동반 책임이 있는 옛 열린우리당 출신이 70명이나 된다. 이른바 ‘386 탄돌이’들이 대체로 살아남았다. 이런 공천으로 건전한 국정 견제세력이라고 자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두 당 모두 ‘개혁 공천’이란 구호가 낯간지러울 지경이다. 결국 유권자가 후보의 자질과 국가관을 따져 투표를 통해 걸러내야 한다.
유권자가 진정 정치의 변화를 바란다면 정치권만 쳐다보고 있어서는 안된다. 후보들의 전력(前歷)과 행적(行蹟) 등을 철저히 검증해 잘 선택하는 것이 유권자의 권리이며 의무이자 자구책(自救策)이다. 정치개혁과 선진화를 이끌 자질과 능력이 있는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법치를 지킬 만한 국가관과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 여러모로 따져 본 뒤에 투표장으로 가야겠다.
민주주의를 구현할 국민대표를 고르는데 그만한 수고와 정성을 아껴서야 되겠는가. 지연 학연 혈연에 얽매여선 안 된다. 낡은 이념 갈등을 조장해 국민을 편 가르거나, 헌법과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우습게 여기는 인물은 없는지도 꼼꼼하게 살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