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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주영의 그림 읽기]온후한 가슴을 가진 사람에겐…

입력 | 2008-03-15 02:49:00


동물들은 특히 그러하지만, 사람들 역시 상대방의 외형적인 모습 한 가지만으로도 곧잘 주눅 들어 합니다. 허우대가 자신보다 우람하고 도발적인 눈초리를 가졌다면, 그 위세에 지레 겁먹고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대판 시비가 벌어져서 핏대를 곤두세우고 거침없이 웃통을 벗어부쳤다가도 동물적으로 우세한 상대방의 체구를 발견하는 순간, 급전직하로 전의를 상실해 버리는 경우는 허다합니다. 완력에 기대어 뽐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성질났다 하면 게거품을 입에 물고 곧잘 윗도리부터 벗어던지며 신체적 우월성을 과시하려 듭니다.

자신의 주장을 논리 정연하게 전개하여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있는 자질에 자신감을 갖지 못한 사람일수록 폭력적인 방법을 통해 문제를 단숨에 해결하려는 욕구에 유혹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매우 동물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동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사람 역시 익숙하지 못한 것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성 간이나 친척 간이라 하더라도 서로 자주 만나서 피부를 만지고, 쓰다듬고, 칭찬해 주고, 배려해 줌으로써 어색한 사이가 익숙하게 되고, 신뢰를 쌓아 정이 도타워짐으로써 그런 거부감을 떨칠 수 있습니다. 먼 바다로 나가 많은 시간을 보내다가 뭍으로 올라온 바다표범이 수백 마리 새끼 중에서 냄새 하나로 자신의 새끼를 찾아내어 젖을 물리는 광경을 보노라면, 낯선 것과 익숙하다는 것도 서로 운명적인 관계를 가졌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생태적으로 갖고 있는 이런 두려움과 낯선 것들에 대한 거부감을 진작 극복할 수 있다면, 행복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 봅니다. 대답은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고릴라와도 아무런 두려움을 두지 않고 입 맞출 수 있는 사람, 침팬지와 한 식탁에 마주 앉아 항상 그랬던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식사할 수 있는 사람, 마음속으로부터 여기저기에 숙적을 심어두고 이를 갈거나 두 눈 부라리지 않는 사람, 세상의 우여곡절과 정면으로 부닥치며 살아오다가 술꾼이 되어 버린 수척한 아버지에게 조용히 다가가 베개를 괴어줄 수 있는 사람, 어둠이 깔린 한밤중, 동구 밖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발짝 소리 하나로 남편의 체취를 알아차릴 수 있는 아내, 음험한 자객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온후한 가슴을 가진 사람, 삶의 굴곡을 그토록 치열하게 거쳐 왔으면서도 얼굴에 그런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아 항상 웃는 사람들이 아마도 그런 동물적인 두려움과 낯선 것들로부터 초월한 삶을 살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