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첫 서원의 순간을 떠올리면서 “나이와 연륜에서 오는 평온과 안정감, 젊은 날에 비해 깊어진 내면과 신앙을 체험한다”는 이해인 수녀. 새 시집 ‘작은 기쁨’을 읽는 독자들이 ‘내 마음과 같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네!’라고 공감하면서 작은 위로와 기쁨을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아침 눈뜨는 것도, 숨쉬는 것도
기쁨이요, 감동이요, 힘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작은 기쁨을 부르고/자꾸만 부르다 보니/작은 기쁨들은//이제 큰 빛이 되어/나의 내면을 밝히고/커다란 강물이 되어/내 혼을 적시네’(‘작은 기쁨’에서)
이해인(63) 수녀는 아침에 눈을 뜨면 숨 쉬는 것에 대해 기뻐한다. 기도 시간에 기억할 사람이 많은 것을, 식탁에서 하루 세 끼 굶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은혜를 기뻐한다. 예기치 않고 찾아오는 손님을 만나면 어떤 숨은 뜻을 배울 수 있을까 기뻐한다.
“기쁨 찾는 기쁨으로 매일을 살다 보면 사소한 것에서도 감동을 느낄 수 있다”고 수녀는 말한다.
이해인 수녀가 새 시집 ‘작은 기쁨’(열림원)을 냈다. 6년 만의 시집 소식이다. 올해는 그가 첫 서원(誓願)을 한 지 4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는 1964년 수도원에 입회했고 수련기 4년을 거친 뒤 1968년 ‘청빈·정결·순명의 삶을 살겠다’는 공적인 약속(서원)을 했다.
“초등학생 때 열세 살 위의 언니가 수녀원에 들어갔어요. 언니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수도생활에 입문하게 됐지요. 첫 서원 땐 수도생활의 무게와 깊이를 다 알지 못하고 무조건 좋아한 것 같습니다.”
부산 수영구 광안동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 수녀원에 있는 이해인 수녀는 기자의 질문에 e메일과 전화로 상냥하게 답했다.
어린 시절부터 키워온 시인의 꿈은 입회해서도 이어져 그는 수도원에서도 짬짬이 시를 썼다. 1976년 종신서원과 더불어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가 나왔다. 이후 나온 8권의 시집, 7권의 에세이집, 8권의 번역서 모두 독자에게 오랜 사랑을 받는 스테디셀러가 됐다.
“초기에는 지나치게 솔직하고 풋풋한 감성을 주체 못한 작품도 많았던 것 같고…. 그래서 외려 독자들에게 울림을 준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세월이 가면서 시도 나이를 먹었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웃의 슬픔과 아픔을 대신 노래해 주려는 시를 많이 쓰게 됐어요.”
요즘 부쩍 ‘작은 기쁨’이라는 단어가 화두처럼 자신을 감싸고 있다고, 작은 기쁨들을 길들여 그 기쁨을 이웃에게도 절로 반사시키는 ‘명랑 수녀’로 살고 싶다고 그는 소망을 밝힌다. 처음 서원했을 때의 “우유부단한 면이나 소녀 취향의 성향은 변하지 않았지만, 세상을 대하는 시선이 넓어졌음을 감사하고, 삶을 하나의 예술로 체험하고 순간순간 기뻐한다”면서.
지난해 가을 수녀의 어머니가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내가 이리 울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마음 놓고 웃는 것이/정말 이상하다’(‘사별 일기’ 중)라고 시로 고백할 만큼 아픔은 컸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땅에서 하늘로 이사 가신 어머니가 거룩한 시가 되어 영감을 주는 것”을 느꼈다.
“‘수녀님의 글은 멀리 집 떠난 언니나 이모가 보내온 정겨운 편지 같다’고 한 소녀가 적어 보낸 글이 있는데, 내 시가 독자에게 그렇게 기억되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수녀는 바란다.
정해진 시간에 공동기도를 하고, 독서하며, 글쓰기 공간인 해인글방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편지를 쓰면서 하루를 보낸다. 요즘 공동기도로 세계의 평화와 생태계 보전을 위한 기도를 자주 하면서, 서신 연락을 하고 있는 ‘담 안의 형제자매들’(재소자들을 수녀는 이렇게 부른다)을 위해서도 기도한다.
경쟁적인 사교육, 숭례문 화재, 초등생 실종·피살…. 세상은 수녀의 기도와 소망과는 너무나 멀다. “내가 수녀가 아니었다면, 남편과 자녀를 가진 엄마였다면, 고운 마음만 갖고 살 수 있었을까” 하고 수녀는 생각해 본다.
추상적인 기도에 머물까 싶어 그는 매일 신문을 보는데, 그때마다 “큰일이 너무 많이 일어나는 세상에서 사람들의 마음이 무디어질까 걱정”이라고 했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 것, 자기 가족만 생각하지 말고 인류를 가족으로 끌어안기를 바란다”고 했다.
“내가 아니면 누가 하나, 지금이 아니면 언제 하나, 하는 마음을 갖기를 소망합니다. ‘삶에 끝이 있다’고 생각하면 겸허해지지 않을까요. 나의 수도생활 40년의 선물이라면, 모든 사람이 가족 같은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 겁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행동은 나쁜 것이지만 사람이 밉지는 않더군요. 저마다 마음의 주인으로서, 마음을 선하게 다스리려는 노력을 해야 죄를 짓지 않을 것입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