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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깃한 수다]미연씨,가는 사랑 붙잡지 말자고요

입력 | 2008-03-18 02:58:00


시작하는 건 보통은 남자다. 먼저 반해서 좋다고 쫓아다닌다. 그렇게 해서 남녀는 사귄다. 행복한 순간들이 흐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자는 관계에 애착을 보인다. 남자는 이를 집착이라고 생각하고 자꾸 딴 데를 본다. 왜냐. 모든 연애서적을 참조하시길. 원래 그렇다. 여자와 남자는 다른 별에서 온 종족이라 언제나 타이밍이 안 맞는다.

상영 중인 영화 ‘허밍’의 커플 미연(한지혜)과 준서(이천희)도 그랬다. 2000일이 다 돼 가는 시점, 남자는 여자가 귀찮아졌다. 떨어져 있고 싶어서 남극기지 근무를 자원했다. 근데 여자는 기다리겠다고 하고, 남자가 전화를 안 받자 비 오는데 그를 찾아가다 교통사고를 당한다. 다음 날 아침, 집으로 찾아온 여자를 대수롭지 않게 대하고 나와 버린 남자는 이후 전화를 받고 혼란에 빠진다. 여자가 교통사고를 당해 전날 밤부터 혼수상태란다.

남자에게 ‘있을 때 잘해’라는 교훈을 주려고 만든 영화, 그런데 거꾸로 여자들에게 “저런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말자”는 메시지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답답했다. 그 여자 주인공처럼 눈치 없기도 힘들다. 남자가 전화를 안 받고 만남을 피하는데 왜 굳이 찾아가다 사고를 당할까. 요새 전화 안 터지는 곳 거의 없다. 바빠서 전화를 못 받을 수는 있다. 발신자 표시 서비스는 괜히 있나? 어쩌면 여자는 알면서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미국 드라마 ‘섹스 앤드 시티’의 작가 그레그 버런트와 리스 투칠로가 쓴 책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He’s just not that into you)’가 떠올랐다. 이 책은 스칼릿 조핸슨, 제니퍼 애니스턴 등이 나오는 로맨틱 코미디로 제작돼 올해 여름에 개봉된다. 그저 그런 가벼운 연애서이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려준다. 여자를 헷갈리게 하는 남자에 대한 대처법이다.

‘먼저 접근하지 않는 남자, 전화를 하지 않고 데이트 신청을 하지 않는 남자, 술기운에만 당신을 찾는 남자, 때가 됐는데 결혼 이야기를 하지 않는 남자, 헤어지자는 말을 쉽게 하는 남자….’ 여자들은 고민하며 나름대로 이유를 붙여 자신을 위안한다. ‘그는 원래 전화를 잘 안 하는 사람이고 지금 일 때문에 힘들고, 사실은 힘든 유년기를 보내 상처가 많고….’

질문은 많은데 이 책의 답은 하나다.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제정신인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면 그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전화기 옆에서 인생 낭비하지 말라는 것. 사실 남녀의 상황이 바뀌어도 마찬가지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쏟는 일방적인 열정은 상대를 더 멀리 달아나게 만든다.

‘허밍’의 미연 씨! 미안하지만 준서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아니 예전엔 분명 사랑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지금은 변했다. 많은 사람들은 시간에 따른 변화를 인정하고 서로 노력하며 살아간다. ‘극약처방’으로 뒤늦게 소중함을 깨달으면 뭐 하나. 영화의 결말과 상관없이, 사고를 당한 당신만 손해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