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후 20일이 마치 6개월 같았다’고 했다. 인수위 때의 ‘노 홀리데이’ 선언이 보여주듯 그의 전력질주는 멈출 줄 모른다. 하루 4시간밖에 자지 않는 이 대통령이 ‘공무원은 국민의 머슴’이라 일갈할 때 철밥통 관료 사회도 움찔했다.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남다른 한국 사회에서 오전 7시 반 국무회의 정례화를 선언할 정도로 열심인 이 대통령의 모습은 일단 신선하다.
부지런하다는 것은 언제나 미덕으로 간주된다. 또한 정치는 모든 직업 가운데서도 공동체를 위한다는 공적 성격이 가장 두드러진 영역이다. 개인의 권력의지와 부귀를 충족시키기 위해 출마했다는 정치인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다. 따라서 정치인들은 예외 없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말한다. ‘정치란 세상을 바로 잡고 진리를 실현하는 것’이라는 오래된 가르침도 원론적 의미의 정치가 선한 일이라는 확신을 길러 왔다. 현실 권력정치가 어지럽고 타락할수록 정치의 이상(理想)이 절실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좋은 일의 대명사인 정치를 열심히 하려 한다. 출퇴근 시간을 무시하고 휴일도 없이 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부지런한 것은 정치의 작은 시작에 불과하다.
인사난맥-밀실공천 국민허탈
정치는 선한 의도가 아니라 책임윤리가 지배하는 결과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짧지 않은 한국 현대정치사에서 역대 대통령은 한결같이 부지런했다. 군사쿠데타로 헌정을 중단시킨 독재자조차 나라를 위한 일이었다고 강변하면서 민주주의를 탄압하는 데 열심이었던 것이다.
현대 민주정치의 지평에서 ‘좋은 일도 잘해야 한다’는 것이 지엄한 명제로 떠오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치의 목표는 좋은 일이어야 하며, 그 과정은 민주적이어야 하고, 정치의 결과는 시민을 성숙하고 잘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명박 정부가 열심히 하려 한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으나, 좋은 일을 잘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심각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지지자들까지 환멸을 곱씹게 만든 내각과 청와대 수석 인사의 난맥상은 국민의 가슴에 대못을 박으면서 ‘1% 특권정부’라는 오명을 낳았다. 문제의 인물들에 대한 임명을 강행하면서 ‘협소한 인재 풀’ 운운하는 것은 건전한 삶을 살아온 많은 보수층을 모독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만을 중용할 때, 공적이어야 할 정치가 사사화(私事化)하는 문제도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새 정부의 힘 있는 자리를 특정지역 출신이 독식하면서, 점차 사라져 가던 지역주의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시대의 과업인 통합 대신 분열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이는 4·9총선에 큰 멍에가 될 것이며 한국정치 전체의 퇴행으로 기록될 공산이 크다.
‘여의도 정치’를 극복한다는 명분 아래 대대적으로 진행된 여당의 공천 물갈이에도 문제가 많다.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주권자인 국민의 참여를 원천 봉쇄한 상의하달식 밀실 공천이 과연 민주적인가? 고령의 중진의원 자동 배제는 다른 형태의 선동정치가 아닌가? 당 내 반대파도 못 껴안으면서 어떻게 국민통합을 운위할 수 있는가? 시대가 바뀌었어도 자리에 연연하는 ‘노무현 코드 기관장들’도 몰염치하지만, 새 문화부 장관이 총대를 메고 밀어붙이는 축출작업도 법률과 절차를 무시한 졸렬한 조치가 아닌가?
과정-절차 존중해야 좋은 정치
경부대운하 사업을 당 공약에서 뺀 채 총선을 치르는 것도 비겁한 일이다. 결과 못지않게 과정과 절차를 존중하는 게 ‘정치를 잘하는 것’의 명백한 지표다. 총선 후 미국발 경제위기를 빌미로 인위적인 국내경기 부양을 위해 대운하 사업을 강행한다면 엄청난 국론분열과 국정낭비가 불가피하다.
국토개조 사업이 좋은 일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나, 국민의 검증과 동의 없이는 그 일을 잘할 수 없다는 것이 민주정치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정치에서는 열심히 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무엇이 좋은 일인가’를 부단히 국민에게 묻고, ‘좋은 일을 잘할 때’ 한국 정치는 한 단계 도약하게 될 것이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사회철학·객원논설위원 pjyoon56@korne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