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었다” 용의자 말만 믿고 의심 안해
전화방 도우미 실종 사건도 전면 재수사
이혜진 양에 이어 우예슬 양마저 18일 오후 토막 난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경찰의 부실수사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최근 수년간 경기 남부지역에서 발생한 부녀자 실종사건에 정 씨가 번번이 수사선상에 올랐지만 경찰은 그를 수백 명의 ‘독거남’ 중 1명으로 보는 데 그쳐 화를 키웠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2004년 7월 17일 군포시 금정역 부근 성인전화방에서 일하던 도우미 A(당시 44세) 씨 실종 사건이 대표적이다. 경찰 조사 결과 A 씨는 실종 당일 오후 11시 43분경 휴대전화로 정 씨와 마지막 통화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당시 정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안양8동 정 씨의 집을 수색하고 혈흔 반응 검사까지 했다. 금정역에서 정 씨 집까지는 차로 2, 3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그러나 이번 초등학생 피살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A 씨의 유류품은 물론이고 혈흔도 나오지 않았다.
정 씨는 경찰에서 “대리운전을 위해 A 씨와 통화만 했을 뿐 실제로 만나지는 않았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정 씨를 수사선상에서 제외했고 이 사건은 현재까지 미제로 남아 있다. 경찰은 이 사건을 재수사하기로 했다.
정 씨는 1년여 전 군포 화성 수원 등지에서 발생한 부녀자 연쇄 실종사건 때도 수사선상에 올랐다.
하지만 대리운전을 하던 정 씨의 개인휴대정보기(PDA)에서 명확한 위치가 확인돼 역시 수사선상에서 제외됐다.
이번 초등학생 실종 수사에서 경찰의 초동수사는 더욱 허점투성이였다. 경찰은 사건 발생 초기 이 양의 집 주변에 사는 독거남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탐문수사를 벌여 정 씨에 대해서도 조사했다.
그러나 경찰은 혈흔 반응 검사에서 아무런 단서가 나오지 않고 정 씨가 “실종 당일 집에 있었다”고 진술하자 별다른 의심 없이 추가 수사를 하지 않았다.
경찰은 이 양의 시신이 수원시 야산에서 발견되고 나서야 렌터카 업체를 대상으로 수사를 벌여 사건 발생 80일 만에 첫 증거인 혈흔을 발견했다. 경찰은 미숙한 수사로 초등학생들의 귀중한 생명을 앗아가게 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안양=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