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7월 한 승려가 일본 교토(京都) 긴카쿠(金閣)사의 목조 건물에 불을 질렀다. 화려한 금색 건물은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이 건물은 1955년 원래 모습대로 재건됐다.
1993년 4월 천황제를 반대하는 한 젊은이가 교토의 닌나(仁和)사의 금당 마루 밑에 자동발화(發火)장치를 설치했다. 그러나 불이 붙기 직전, 마루 밑에 설치해 놓은 열 감지기의 경보가 울려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
목조 고건축물이 밀집해 있는 일본의 고도(古都) 교토. 화마의 시련을 겪거나 고비를 넘긴 이들 사찰은 지금 어떤 상황일까. 숭례문 화재를 경험한 우리에게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15∼17일 명지대 한국건축문화연구소장인 김홍식 교수팀과 함께 교토지역 목조 건축 문화재의 방재 시스템 현장을 둘러보았다. 한국건축문화연구소는 17일 교토 리쓰메이칸(立命館)대 문화유산방재추진기구와 ‘역사 도시를 지키는 문화유산 방재연구거점 교류협약’을 체결했다.
16일 긴카쿠사를 찾았을 때, 황금색 목조 건물 주변엔 화재시 물을 뿜어 올리는 물총(방수총·放水銃)이 한 면에 두 개씩 모두 8개가 설치돼 있었다. 화재 발생시 사찰의 중앙방재센터에서 버튼 하나만 누르면 바로 물이 위로 뿜어져 올라가는 시스템이다.
닌나사의 화재 예방 대책은 더 치밀했다. 현재 이 사찰 경내 96곳에 화재감지기를 설치해 놓았다. 이들 감지기는 사찰 내 3곳의 상황판 및 소방서와 연결돼 실시간으로 알려준다.
닌나사는 소화전은 물론이고 방수총도 완벽했다. 이날 오후 닌나사의 방재를 담당하는 스즈키 기코(鈴木義晃) 스님 등이 5층 목탑(높이 36m) 바로 옆의 방수총 작동을 시연했다. 총구를 연결하고 밸브를 여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10초. 곧바로 물줄기가 50m 높이까지 치솟았다. 방수총의 총구는 회전이 가능해 원하는 방향으로 물줄기를 조종할 수 있었다.
이 방수총은 정전이 되어도 작동이 가능하다. 사찰 뒤쪽의 높은 곳에 400t 용량의 저수조를 만들어 이곳의 물이 방수총으로 내려가도록 해놓았다. 따라서 전기의 힘 없이도 밸브를 열기만 하면 수압에 의해 물이 총구 밖으로 솟구쳐 오르는 것이다. 스즈키 스님은 “100년에 한 번 정도 화재가 발생한다”면서 “그 한 번의 화재에 대비하기 위해 승려들과 주민들이 매년 10차례 방화 훈련을 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목조 건축 문화재 방재 대책은 다양하다. 교토 료안(龍安)사의 경우 벽과 천장에 열 감지선을 설치해 화재를 즉시 감지할 수 있도록 했다. 축대까지 나무로 된 기요미즈(淸水)사 금당의 경우 지붕 위에도 소화 스프레이를 설치해 화재시 물이 뿜어져 나갈 수 있도록 해놓았다.
1950년 이후 오래된 목조 사찰 건물에서 전기 사용을 법적으로 금지한 것도 중요한 방화 대책의 하나. 김홍식 교수는 “우리도 오래된 중요 사찰 건축물에선 전기 사용을 금해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면 서둘러 관리 기준이라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19세기 전후 목조 건축물이 밀집해 있는 교토의 기온신바시(祇園新橋)는 이색적이다. 1865년 화재를 경험했던 교토시 당국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목조 건축물 군집 사이로 도로를 건설하는 조치를 취했다.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 불길이 순식간에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교토 리쓰메이칸대 역사도시방재연구센터의 마스다 가네후사(益田兼房) 교수는 “상당수 문화재는 종이와 나무라고 보고 꾸준한 훈련을 통해 예방에 주력해야 한다”며 “100여 채의 초가가 있는 기후(岐阜) 현 시라카와 역사마을(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경우 매년 두 차례 실시하는 대대적인 방화 훈련이 관광상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교토=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