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일어 외에 통역요원 태부족...단기체류자 신원확인도 못해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의 범죄가 갈수록 흉포화, 지능화 하고 있다. 하지만 외국인 및 외국인 인권단체들의 반발, 언어장벽 등으로 인해 경찰 수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신용카드 복제 혐의로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잡혀온 홍콩, 나이지리아, 싱가포르 국적의 외국인 3명은 외사계 사무실에서 물품을 집어던지는 등 한바탕 난동을 부렸다.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김종미 전 외사계장은 "우리 사회가 외국인 인권을 중요시 하는 분위기인 것을 알고 그들이 일부러 난리를 피우는 통에 애를 먹었다"며 "외국인 피의자가 너무 난동을 피워 제지하려 들면 '인권위나 시민단체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하는 경우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경찰청에 따르면 2001년 4328건에 불과했던 외국인 범죄는 지난해에는 1만4524건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범죄 유형도 단순 폭력 범죄에서 강력·지능 범죄 위주로 변하고 있다.
2001년에는 외국인 범죄 가운데 폭력이 1380건으로 가장 많았으나 2005년을 기점으로 사기, 횡령 등 지능 범죄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 인권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와 예산·인원상의 제약 때문에 경찰은 외국인 범죄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경찰관은 "외국인 불법 체류자에 관대한 사회적 분위기 탓에 일부 외국인 피의자들은 '인권'을 입에 달고 산다"며 "단순 폭행, 절도 혐의로 잡혀온 외국인 피의자들 보다 강력 범죄 사범이나 지능 범죄 사범으로 잡혀온 외국인들이 유독 심하다"고 말했다.
신원 확인 문제에서도 경찰은 벙어리 냉가슴을 앓을 수밖에 없다.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단기체류(3개월 미만) 외국인의 경우 지문 날인을 하지 않기 때문에 피의자를 잡아도 신원 확인이 불가능할 때가 있다"며 "그렇다고 인권 침해 문제가 있기 때문에 지문 날인을 주장할 수도 없다"고 털어놓았다.
여기에 외국인 수사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언어 장벽'은 지능, 강력 범죄 수사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현재 경찰은 887명의 자체 통역 인원을 보유하고 있지만 영어·일어를 제외한 타·언어 통역 인원은 182명에 불과하다.
외국인 범죄를 담당하는 외사 인력은 몇 년 째 1000여 명 선에 머무르고 있다.
서울 강남 지역의 한 지능팀장은 "단순 폭행 사건은 언어가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지능 범죄는 다르다"며 "보이스 피싱 같은 지능 범죄의 경우 하수인 격인 외국인 피의자를 붙잡아도 외국어로 조사하기가 어렵다 보니 그 윗선 까지 잡아들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서울 이태원, 경기 안산 등지에서 외국인 범죄 조직이 결성되고 있다는 첩보가 계속해서 접수되고 있지만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 용산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조직범죄의 경우 정보원 관리가 중요하지만 국내 형사들에게 외국인 정보원 관리가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언어와 인권 문제는 시민단체들이 가장 많이 지적하는 문제점이다.
외국인이주노동협의회 우삼열 사무처장은 "전문 통역인이 아니기 때문에 통역 자체가 불충분하고, 따라서 외국인에게 불리한 내용의 조사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또 일반 이주노동자들은 기본적인 인권의식 조차 없어 경찰이 하라는 대로 다 하기 때문에 더욱 불리한 환경에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계명대 경찰학과 허경미 교수는 "외국인 범죄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경찰도 외국인 수사를 담당하는 인력을 늘리는 것과 함께 장기적으로 외국어 구사 능력과 외국 문화 이해 능력을 갖춘 전문 수사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나성엽 기자 cp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