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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33년 美루스벨트 대통령 ‘경제법’서명

입력 | 2008-03-20 03:02:00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마음은 무척 급했다.

하루빨리 대공황의 늪에서 국민들을 구해내는 게 그의 임무. 1933년 3월 4일 취임하자마자 그는 경제 회복을 위한 입법에 착수했다.

3월 9일 ‘긴급은행법(Emergency Banking Act)’이 의회를 통과했다. 신임 대통령의 번개 같은 입법에 국민들은 놀랐다. 하지만 루스벨트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놀랄 틈을 주지 않았다. 바로 그날 ‘경제법(Economy Act)’이라는 새로운 법을 입안한 것이다.

입안에서부터 시행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일사천리. 11일 뒤인 3월 20일 그는 ‘경제법’에 서명을 하고 발효시켰다. 속도뿐 아니라 강도에 있어서도 충격의 연속이었다.

‘경제법’을 통해 그는 공무원의 월급을 대폭 삭감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예비역들에게 지급하는 연금도 최대 15%까지 축소했다. 반발이 심했지만 그는 적자예산을 피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조치라며 이해 당사자들을 설득했다.

충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농업조정법’ ‘전국산업부흥법’ 등 새로운 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시행됐다. 루스벨트 대통령 취임 직후 소집된 의회는 ‘100일 의회(Hundred Days)’로 불리는 특별회기 동안 10여 개의 개혁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국 역사에서 취임 초기 이처럼 활발한 입법 활동을 한 대통령은 없었다. 당시의 입법 활동은 미국 정치사의 전설로 꼽힌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입법 기계(legislative machine)’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새로 제정된 법은 성공과 실패로 엇갈렸다. ‘위기은행법’은 은행들의 연쇄 파산을 막았고 수천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반면 농민들에게 보조금을 줘 감산을 유도하려 했던 ‘농업조정법’은 농작물이 다 자란 시점에 시행되는 바람에 실익을 거두지 못했다.

뉴딜 정책 전반의 성패(成敗)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뉴딜 정책이 미국을 공황으로부터 구해내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실효성을 떠나 적극적인 타개책을 내놓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의지만큼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또 늘 웃는 모습으로 국민을 안심시키려 했다. 더 나아가 “관료주의에서 비롯된 불황을 끝내겠다”며 정부의 솔선수범을 강조했다.

어려운 시기 정부의 지출부터 줄임으로써 뉴딜 정책 수행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려 한 ‘경제법’도 그런 생각에서 그가 직접 고안해낸 법이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