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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트랜스크리틱

입력 | 2008-03-20 03:02:00


《“내가 트랜스크리틱이라 부르는 것은 윤리성과 정치경제학 영역의 사이, 칸트적 비판과 마르크스적 비판 사이의 코드 변환, 즉 칸트로부터 마르크스를 읽어내고 마르크스로부터 칸트를 읽어내는 시도이다.”》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67)은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저서로 국내에 큰 충격을 주면서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진 평론가다. 뛰어난 문예비평가로 일본뿐 아니라 세계에서 명성이 높지만, 그의 관심이 문학에만 머문 것은 아니다. 가라타니는 철학과 사상사, 사회학을 넘나드는 폭넓은 연구와 저술 활동에 매진해 왔다. ‘트랜스크리틱(transcritique)’은 그 증거다.

‘칸트와 마르크스 넘어서기’라는 부제가 보여 주듯 이 책은 칸트와 마르크스라는 대단히 이질적인 두 철학자를 소통시키려는 시도다. 특히 가라타니가 집중하는 것은 두 철학자의 ‘비판정신’이다. 저자 자신은 “물론 ‘비판’은 상대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음미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에서 자본의 한계를, 칸트의 형이상학 비판에서 인간 이성의 한계를 짚는다.

제1부는 칸트 다시 읽기, 제2부는 마르크스 다시 읽기다. 도쿄대 경제학부를 졸업한 저자의 관심은 마르크스 쪽에 좀 더 기울어진다. 저자는 “마르크스주의적 정당과 국가가 붕괴한 1989년 이후 칸트에 대해 사고하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철학의 한 정점에 선 이 철학자에 대해 10년에 걸쳐 ‘칸트론’을 쓸 만큼 가라타니는 집요하게 칸트를 연구한다.

가라타니는 칸트가 ‘공공 개념의 전복’을 시도했다고 해석함으로써, 칸트에게서 사회주의적 요소를 발견한다. 칸트는 국가 입장에 선 것을 ‘사적(私的)’인 것으로, 개인이 모든 국가 규제에서 벗어나서 생각하는 것을 ‘공적(公的)’인 것으로 파악한다는 게 가라타니 칸트론의 핵심이다. 이것은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경제와 국가에 대한 비판과 맞닿는다.

그럼에도 ‘자본론’이 자본주의에 대한 출구를 제시하는 것은 아니라고 가라타니는 밝힌다. 오히려 그 출구가 찾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저자는 시스템에 대한 반성을 끌어낸다.

그러나 이 책이 비관적인 결론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가라타니는 그가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대안을 내놓는다. 마르크스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는 저자답게, 그는 마르크스가 생각했던 ‘가능한 코뮤니즘’의 재생을 시도한다. 그것은 생산의 국유화나 일당 독재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자의 연합사회’를 가리킨다. 가설이지만, 가라타니는 이 이상적인 자율공동체에 대한 논의가 폭넓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소망을 책을 통해 밝힌다.

이 책을 추천한 강신주(철학) 연세대 강사는 “전혀 이질적인 것처럼 보이는 칸트와 마르크스를 글자 그대로 횡단적으로 읽어 내는 작업을 수행한 책으로, 저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비판적으로 진단할 수 있는 시선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썼다고 저자는 밝히지만, 일반 독자들이 이해하려면 칸트와 마르크스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를 갖춰야 하는 게 사실이다.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쓴 소개의 글 ‘트랜스크리틱이란 무엇인가’를 꼼꼼하게 읽는 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