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선출마후 첫 인종문제 정면제기 연설
"단순한 선거용 연설로 들리지 않았다. 오바마가 자신을 키워준 미국의 역사와 동시대인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처럼 느껴졌다."(크리스 윌버트 씨·버지니아주 주민·민주당 지지)
"내용의 옳고 그름이나 깊이를 떠나 이번 버락 오바마 의원의 연설은 그에게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인종문제를 본격 거론한 탓에 역설적으로 지금까지의 '탈(脫) 인종적' '탈 세대적' 후보라는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미 공화당 관계자)
오바마 후보는 다음달 22일 프라이머리가 열릴 펜실베이니아 주의 필라델피아 시에 있는 헌법기념관 단상에서 40여분 간 특별연설을 통해 인종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상세히 밝혔다.
지난주 터진 자신의 담임목사인 제레미아 라이트 목사의 '갓뎀 어메리카' 설교 파문이 갈수록 확산되자 승부를 건 것이다.
▽"인종문제도 미국의 한 부분"=오바마 후보는 라이트 목사의 문제 발언들에 대해 "진정으로 통합이 필요할 때 분열을 일으킨 발언이었으며 명확하게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라이트 목사의 문제 발언중 '9·11테러를 미국이 자초했다'는 뉘앙스를 풍긴 대목의 민감성을 의식한 듯 "중동의 갈등이 극단적 이슬람주의자들의 증오에 찬 이데올로기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같은 맹방 때문이라고 보는 그런 견해는 왜곡된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라이트 목사의 발언은 수세대에 걸쳐 미국 사회가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좁히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인종문제의 복잡성을 드러낸 것"이라며 "(인종문제도) 우리가 완전하게 만들어 나가야 할 이 나라의 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이를 단순화하거나 부정적인 면을 과장해서도 안된다"며 흑백 양측의 과격론을 경계했다.
그는 케냐 출신의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백인 외조부모 아래서 자라난 자신의 성장배경, 전 세대 흑인들이 겪은 상처의 기억 등을 감성적으로 짚으며 "조심스럽게 미국의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말자"고 호소했다.
▽전문가들 "킹 목사 연설에 비견돼"= 미국의 주요 언론과 평론가들은 그의 연설이 정치적으로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에 대해선 매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연설의 사회적, 역사적 의미에 대한 평가에는 대부분 인색하지 않았다.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로 시작되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역사적인 1963년 연설 이래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공개적으로 접근하기 꺼려했던 인종문제에 대해 가장 진지하게 천착한 연설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저명한 흑인 지도자인 월터 플루커 모어하우스 대학 리더십센터 소장은 미 언론들과 인터뷰에서 "킹 목사 연설 이후 두, 세 세대에 걸친 문화적 공백이 있었고 우리의 기억은 과거의 편린들만 취하는 경향이 있다"며 "오바마는 그 공백으로 들어가 과거와 미래의 화해, 서로를 갈라놓은 선 안에 머물러 있지 말자고 호소했다"고 평가했다.
하워드대학 알톤 폴라드 학장은 "그의 운명을 바꿔놓을 수도 있는 결정적 순간이었는데 오바마는 이를 외면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워싱턴의 한 싱크탱크 연구원은 "형편없지도, 완전하지도 못한 우리의 현실을 진지하게 짚었다"며 "문제를 직시하면서도 분노를 선동하기 보다는 화해와 단결을 호소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오바마 후보가 위험한 주제에 발을 디뎠다는 평가도 나온다. 라이트 목사류의 과격한 논리와 선을 긋는 것도 충분치 못했다는 평가다.
한 공화당 간부는 본보 기자에게 "최근 조짐이 일고 있는 백인 중장년층의 이탈을 확산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