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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이 전국 땅 다 파헤쳐야 하나”

입력 | 2008-03-20 19:37:00

‘얘야, 어디에 있는 거니?’ 20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에 위치한 실종자 가족 모임에서 실종 아동 부모들이 전단지를 보고 있다. 김재명 기자


우예슬(8) 양의 시신이 발견된 18일.

윤봉원(45) 씨는 경찰이 수색작업을 벌이던 경기 시흥시 군자천을 찾았다.

9년 전 학교 현장학습에 갔다 귀갓길에 실종된 윤 씨의 딸 지연이는 당시 우 양과 같은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윤 씨는 "시신이 내 딸일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왜 모르겠냐"며 "마음 같아서는 전국의 땅을 다 파고 다니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윤 씨는 안양에 마련된 우 양의 빈소에서 밤새 술을 마셨다.

▽"초동수사만 빨리 시작했어도…"=이혜진(10) 양과 우 양의 피살 소식을 들은 실종아동 부모들은 "변사체가 아닌 살아있는 아이를 찾자고 그렇게 애원했건만…"이라며 탄식했다.

부모들은 "실종 신고를 하면 단순 가출 취급할 게 아니라 초기에 적극 수사해야 한다는 요구를 묵살한 결과"라며 경찰을 질타했다.

어린이 유괴는 12시간 내에 해결하지 못하면 생존확률이 크게 떨어지는데도 경찰은 목격자의 진술 등 구체적인 범죄 혐의가 없으면 신고 접수 후 24시간 지나서야 수사를 시작한다.

이 양 등이 실종됐을 때도 신고 접수 일주일이 지나서야 엠버발령을 냈다.

이 때문에 실종아동 부모들은 경찰에 의지하기보다는 직접 '탐문수사'를 벌이고 있다.

5년 전 네 살배기 아들을 잃어버린 박혜숙(41¤여) 씨는 "아이가 돌아오지 않아 경찰서에 신고를 하러 갔더니 담당 경찰은 '집에 가서 기다리면 곧 돌아올 거'라며 유괴 신고 접수도 받지 않았다"며 "이런 경찰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실종 아동 전담팀은 언제쯤이나…"=매년 아이들의 실종은 늘어가고 있지만 경찰은 실종 전담 부서나 전문 수사 인력도 갖추지 않고 있다.

일선 경찰서에서 실종 신고는 여성청소년계 직원 1~2명이 맡고 있으며 사건 수사는 대부분 강력사건을 수사하는 형사계에서 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아동 실종의 경우 시간과 인력이 많이 필요하고 고가에도 크게 반영되지 않아 수사에 소극적인 편"이라며 "형사들의 경우 밀린 형사사건 처리에도 바빠 아이들을 제대로 찾아 나설 형편이 못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경찰대 표창원 교수는 "선진국의 경우 아동 실종사건이 접수되면 미국 연방수사국, 영국 국가경찰진흥청 등 아동 전문 대응팀이 수사 자문을 맡는다"며 "우리는 일선 지구대 경찰 등 전문성이 부족한 인력이 초동수사를 맡아 현장에서 중요한 단서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경찰은 3월 한 달 동안 전국의 실종아동에 대한 재수사를 벌이고 있다.

8살이던 막내딸을 잃어버린 강현숙(46¤여) 씨는 "우리 집은 지난 8년 동안 하루도 대문을 잠그지 못하고 살았다"며 "시신이라도 발견돼서 가슴에 고이 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광영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