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겠죠….” 1987년, 가난한 17세 소녀가 한걸음에 달려간 곳은 작은 스튜디오. 그곳에서 그가 받은 것은 여가수 브렌다 케이 스타의 신곡 ‘아이 스틸 빌리브’ 악보였다. 보잘것없던 이 코러스 소녀의 이름은 머라이어 캐리. 믿는 것이라곤 목소리뿐이었다. 세계적인 팝스타 머라이어 캐리. 수십 명의 코러스 단원을 데리고 다닐 정도로 거물이 됐지만 처음엔 코러스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했다. 12년 후 코러스가 아닌 7옥타브를 넘나드는 자신의 목소리로 ‘아이 스틸 빌리브’를 리메이크 했고 이러한 인생 역전에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팝의 신데렐라’라고 불렀다. 이제 브렌다는 없었다.》
20년간 20000곡 코러스
내 도움 안받은 가수 없죠
세상엔 신데렐라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코러스 외길 인생 20년, 오늘도 ‘워우워’를 외치는 ‘코러스 대모’ 김현아(38) 씨. 조용필, 전영록을 비롯해 이승철, 신해철, 신승훈, 김건모, 조성모, ‘H.O.T’, ‘핑클’, 보아, ‘동방신기’, ‘sg워너비’, 장윤정 그리고 ‘원더걸스’까지… 20년간 그는 국내 가수들의 앨범 뒤편 ‘코러스’란을 장식해왔다. “현아 없으면 우리 가요계 망해”(이승철) “현아 씨 외국 가는 날엔 녹음 스케줄도 미루죠”(작곡가 주영훈) “녹음하러 오는 길 막히면 헬기라도 띄울게”(‘버즈’ 제작자 박봉성).
○여행스케치 1기 멤버, 집안 어려워져 가수 포기
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그의 녹음실로 찾아갔다. 첫 인터뷰였지만 모습은 ‘부스스’ 그 자체였다. “한 시간 전에 일어났다”고 말하는 그의 뒤편으로 괘종시계가 6번 ‘뎅뎅’거렸다.
“벌써 20년… 매일 오전 2시까지 코러스 녹음하고 4년 전부터는 대학교(호원대, 서울종합예술대) 실용음악과에 나가 ‘보컬’ 강의도 하고… 뒤돌아볼 여유가 없어요.”
―코러스 해준 가수들 다 기억나요?
“이미자, 패티김 선배님, 그리고 서태지 씨만 빼놓고 거의 모든 가수의 음반에 참여했어요. ‘원더걸스’의 ‘텔 미’, 장윤정의 ‘어머나’, 송대관의 ‘네 박자’ 등이 제 대표곡이죠. 곡 수로 치면 1년에 1000곡씩 했으니 2만 곡 정도? 얼마 전에는 온라인 가요차트 1위부터 10위까지가 다 내가 코러스한 노래더라고요.”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박영대 기자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사랑과 우정 사이’예요. 가수들이 하도 리메이크를 많이 해 똑같은 곡을 10번도 넘게 녹음했죠. 가장 힘들었던 곡은 신승훈의 ‘드림 오브 마이 라이프’인데 흑인 가스펠 합창단 소리를 내기 위해 저 혼자 목소리 10개를 바꿔가며 녹음했죠. 반면 이승철의 ‘긴 하루’는 20분 만에 뚝딱 해치웠는데도 대박 나더라고요.”
1988년 대학생 중창단 ‘여행스케치’ 1기 멤버로 데뷔했다. 팀 활동과 함께 김광석, ‘낯선 사람들’ 등 같은 음반사(서울음반) 소속 가수들의 코러스를 맡았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심장병으로 쓰러졌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도 교통사고를 당해 전치 12주 진단이 나왔다. ‘여행스케치’ 대학로 소극장 공연으로 한 달에 10만 원 버는 것으론 턱도 없었다. 집안의 장녀로서 그에게 음악은 점점 ‘사치’처럼 돼갔다.
‘무조건 돈 벌자’고 마음먹은 그에게 찾아온 것은 바로 선배 코러스 가수인 신윤미. “코러스로 돈 벌자”는 말에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 위치한 ‘서울 스튜디오 B’로 달려갔다. 생애 처음으로 돈을 받고 목소리를 실어준 노래는 바로 1991년 발표된 ‘015B’의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였다. 녹음 후 그가 손에 쥔 돈은 달랑 만 원짜리 세 장. 하지만 그속에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희망’이 들어 있었다.
―가장 노래 잘하는 가수는 누군가요?
“단연 이승철 오빠요. 듣는 이로 하여금 노래에 스며들게 하는 능력을 갖고 있죠. 이런 가수들과 작업하면 저도 쉬엄쉬엄 할 수 있어요.”
―노래를 가장 못하는 가수는요?
“하하. 글쎄요…. 댄스 가수나 ‘예쁜’ 가수들 중에 좀 있죠. 제작자들이 코러스를 풍부하게 넣어 달라고 미리 부탁해요. 가끔 심하게 노래를 못하는 가수가 있는데 그땐 마이크 뺏어서 내가 대신 부르고 싶다니까요.”
―시대마다 코러스 방식도 다르지 않나요?
“1980년대에는 ‘듀엣’ 형식으로 깔아주었고 90년대에는 댄스 가수들을 위해 최대한 풍부하게 화음을 넣는 방식이 유행했죠. 디지털 음원 시대인 요즘은 바이올린, 플루트 등 하나의 ‘악기’처럼 소리를 내거나 조성모의 ‘다짐’에 나왔던 ‘빠라바빠빠 빠바’ 하는 식으로 다른 멜로디를 만드는 형태로 발전했어요.”
인터뷰 도중 쉴 새 없이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현재 한 프로(4시간 단위 녹음 시간)에 45만 원을 받고 녹음을 하고 있다. “하루에 스케줄이 6개 잡힐 때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간 눈물을 머금은 적이 수없이 많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 미녀 가수를 대신해 립싱크를 하던 뚱녀 한나처럼 그도 그렇게 살았다.
“얼굴 예쁜 음치를 데려와서 립싱크해 달라고 부탁하는 제작자도 있었죠. 그땐 ‘이렇게라도 돈을 벌어야 하나’ 싶어 진짜 많이 울었어요. 가요계가 망했다는 생각도 들었고 스스로 비참했어요.”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박영대 기자
국내 최초 ‘교본’ 내는 게 꿈
‘얼굴 못생긴 가수는 코러스나 해라’
비하하는 현실 깨버리고 싶어요
○얼굴 예쁜 음치 가수 위해 립싱크 제의받기도
―차라리 음반을 내지 그랬어요?
“코러스만 20년 하니 내 노래를 못 부르겠더군요. 발라드, 댄스, 트로트 등 제작자가 원하는 목소리만을 내다보니 내 개성이 없어졌어요. 직업병이죠.”
―예전엔 앨범을 사서 들었는데 지금은 ‘파일’만 떠다니니 누가 코러스를 했는지 관심도 없죠.
“음악이 소모품이 돼 버린 현실이 안타까워요. 그래도 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아요. 얼마 전에 ‘동방신기’ 음반 녹음하러 갔는데 팬들이 ‘야, 김현아다’라며 절 알아봤어요.”
그는 코러스를 ‘중용’이라 얘기했다. 조금만 튀어도, 살짝만 묻혀도 노래를 망칠 수 있기에 ‘선’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도 그는 6인조 흑인 아카펠라 그룹 ‘테이크 6’의 음악을 들으며 화성 공부를 한다. 그의 꿈은 국내 최초의 ‘코러스 교본’을 내는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 “얼굴 못생긴 가수에게 ‘그냥 코러스나 해라’라고 비하하는 현실을 깨기 위해서”란다. 어쩌면 20년간 그가 해온 ‘워우워’는 한 편의 ‘투쟁’이었을지 모른다. 너무 열심히 투쟁한 탓일까. 그의 삶에 코러스를 입혀줄 짝은 아직 없다.
“뭐, 내가 코러스고 코러스가 내 삶이니까요. 짝이 없으면 어때? 지금 이 순간이 즐거운데. 난 국가대표 코러스 선수잖아요.”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박영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