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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조용우]고통분담 과제 남긴 ‘레미콘 상생 합의’

입력 | 2008-03-22 03:00:00


“납품단가 현실화는 시장원리에 따라 결정돼야 하지만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차원에서 실질적 협의가 이뤄지도록 적극 나서기로 했다.”

20일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과 중소기업 대표 간 간담회에서 중기중앙회의 중소기업 납품단가 현실화 요청에 전경련이 답한 내용이다.

이날은 주물(鑄物)업계에 이어 레미콘업계까지 생산 중단에 들어가면서 건설현장마다 공사가 중단되기 시작한 다음 날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 대표들이 중소기업 대표들을 만나 2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눈 결과치고는 지극히 원론적인 수준이었다. 발표문을 접한 상당수 재계 인사도 “양측이 서로 다른 얘기만 하고 끝난 것 같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어찌됐건 이날 간담회 이후 주물, 레미콘 등 이미 생산 중단에 들어간 업체들뿐 아니라 파업 움직임을 보이던 업계까지 집단행동을 자제하기로 했다. 의견 차가 커 협상이 결렬됐던 레미콘업계와 건설회사 간 납품단가 협상도 밤늦게 재개돼 21일 새벽 타결됐다.

산업계에서는 “실질적인 협의가 이뤄지도록 적극 나서기로 했다”는 전경련의 원론적인 대답이 자칫 어려운 경제를 더욱 어렵게 할 수 있는 상황을 조기에 막아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경련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중소업체 대표들은 한결같이 “전경련 회장이 돕겠다고 했으니 일단 믿고 납품을 재개하겠지만 약속 이행이 안 되면 더 강하게 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중소업체들이 집단행동은 풀었지만 대기업에 대한 불신까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원자재값 급등은 대기업에도 타격이 크지만 그래도 국민의 눈에는 상대적으로 대기업의 형편이 나은 것으로 보인다. ‘상생협력을 위해 적극 나서겠다’는 원론적인 대답이 구두선(口頭禪)에 머물러선 곤란하다.

중소기업 역시 집단행동만 하면 대기업의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조그마한 단기 이익은 챙길지 몰라도 집단행동으로 피해를 보는 국민이 늘고 경제에 주름살이 가면 언젠가는 중소기업에 부메랑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진정한 상생은 양쪽 모두 노력해야 얻어질 ‘과실(果實)’이다.

조용우 산업부 woo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