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파주시 적성면에 거주하는 농부 최재현 씨가 ‘북한군·중공군 묘지‘를 걷고 있다. 6·25전쟁 당시의 끔찍했던 기억 때문에 아직도 북한을 증오한다는 그는 이곳을 방문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라고 털어놓았다. 사진 출처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
IHT “파주 적군묘에 묻힌 공작원등 北서 인도 거부” 보도
남북한을 가로지르는 비무장지대(DMZ) 남쪽 경기 파주시 적성면의 한 묘역.
다른 한국의 전통적인 묘가 남향인 것과는 달리 이곳의 묘는 모두 북향이다. 한국의 군 당국이 1996년 5월 전국에 흩어져 있던 북한군과 중공군 등 적군의 시체를 모아 조성한 이른바 ‘적군묘’다. 고향을 향한 수구초심(首丘初心)을 감안해 북향으로 배치한 것.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은 21일 6·25전쟁의 비극과 상처가 남아 있는 파주의 ‘북한군·중국군 묘지’를 1면 기사를 포함해 2개 면으로 소개했다.
줄지어 늘어선 무덤엔 묘비 하나 찾을 수 없다. 계급과 이름, 또는 ‘무명인’이라고 쓰인 1m 크기의 흰색 나무 푯말이 꽂혀 있을 뿐이다. 신문은 6·25전쟁(1950∼1953년) 당시 공산군 희생자와 전쟁 이후 침투 과정에서 죽은 북한 공작원들이 고향에 갈 날을 기다리며 이곳에 묻혀 있다고 전했다.
묘역 인근에 거주하는 농부 최재현(73) 씨는 “우리(한국인)는 여전히 북한을 미워하기 때문에 이곳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이 묘지는 당초 ‘육군 6·25 전사자 유해발굴반’이 발굴한 적군의 유해를 보관하기 위해 마련됐다. 1996년 전국에 뿔뿔이 흩어졌다가 이곳에 오게 된 적군과 공작원의 시신은 96구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주요 전투지 발굴 작업이 본격화되면서 안장된 시신이 391구로 늘었다.
신문은 “시신 대부분을 북측으로 송환하기 위해 발굴했지만 송환은 요원해 보인다”고 전했다. 공작원 침투 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껄끄러워하는 북한이 이들의 존재 자체를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1968년 1월 21일 박정희 대통령의 목숨을 노리고 침투했다가 사살된 북한 공작원들도, 1987년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 사건을 일으킨 뒤 체포 직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공작원 김승일도 이곳에 묻혔다.
주민 곽호윤(70) 씨는 “살아 있었다면 나보다 나이가 많았을 사람들”이라며 “그들을 기억하는 친지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라도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