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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유주식 200억원 ‘슈퍼개미’의 투자비법은?

입력 | 2008-03-22 12:39:00


"투자 수익을 이웃과 나누겠다는 생각 때문에 늘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시장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소신에 따라 투자할 수 있었죠."

1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 총장실. 시가 6000만 원 상당의 제일약품 주식 5000주를 기부하기 위해 이 곳을 찾은 '행복한 주주포럼' 공동대표 표형식(53)씨가 "나만의 투자 비법"이라며 이렇게 소개했다.

주식 투자 경력 10년차인 전문 투자가인 표 씨의 재산은 수 백 억 원대. 그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평가액만 200억 원에 달한다.

최고급 수입차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작 그는 터벅터벅 걸어서 학교에 들어섰다.

"차량유지비만 해도 얼마입니까. 제가 주식에 투자해 얻은 금액은 저를 위해 쓰기보다 이웃과 함께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그는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전 재산을 날려 빈 털털이가 됐다. 이사로 일하던 중소기업이 1994년 도산한 이후 설상가상으로 빚보증까지 잘못 섰다.

"전 재산이 300만 원이 남아있었을 때였어요. 선배 한 분이 돈을 빌려달라며 찾아왔습니다. 그 돈은 저의 목숨과도 같았지만 손사레를 치는 아내를 뒤로 하고 300만 원을 결국 내줬습니다. 빈손이 됐지만 마음은 홀가분하더라고요."

그는 이후 남대문 시장 모자 노점상으로 나섰다. 지인에게 빌린 100만 원으로 한 개에 500~1000원 하는 모자를 "골라~ 골라~" 손뼉을 치며 팔기 시작했다.

"당장 생활비 10만원이 없으니, 금방 현실에 적응이 됐습니다. 왕년에 내가 기업 임원이었다는 생각은 곧 잊혀지더군요."

1998년 그의 수중엔 3000만 원이 생겼다. 노점상을 해 모은 돈 1500만 원과 보증 서 줬던 사람들로부터 돌려받은 돈 1500만 원. 이를 종자돈 삼아 그는 주식 투자에 나섰다.

"외환위기 직후 주식은 폭락했지만 회복 속도는 그 어느 때보다 빨랐습니다. 정부의 능력이나 기업 기본 체력이 튼튼했기 때문에 이런 투자 호기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2, 3년 사이 주가는 외환위기 전 수준으로 회복됐고 일부 테마주는 몇 개월 사이에 20~30배씩 상승했다. 주식이라기 보단 '로또'에 가까웠다.

그는 몫 돈이 마련되자 평생 투자할 만한 기업을 찾기 시작했다. 그 기업에 다 걸기 하는 대신 회사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거나 잘못된 전략을 구사할 경우 직접 경영진을 찾아가 조언하는 열정도 아끼지 않았다.

2005년 상장사인 일성신약의 배당정책에 항의하는 소액주주 운동을 펼쳐 '슈퍼개미'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던 그는 지난해에는 소액투자자 200여 명을 주축으로 '행복한 주주포럼'을 발족했다.

표 씨는 "아직도 많은 주식투자자들이 투기꾼으로만 인식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개인투자자들도 이제 사회에 공헌하고 이웃을 돌보는 '행복한 주주'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들이 다니는 연세대에 기부해 온 2억원을 비롯해 지금까지 그가 사회에 내놓은 주식 및 현금은 20여억 원.

고교 시절 낮에는 신문과 우유 배달을 하고 야간고등학교를 다녔던 그는 "앞으로도 매년 투자수익의 20% 이상은 기부할 것"이라며 "5월에는 '행복한 주주 장학재단'을 설립해 가난한 학생들의 학비를 지원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연세대는 표 씨가 이번에 기부한 6000만 원을 의대 줄기세포 사업단 김동욱 교수 연구팀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김 교수는 "인간배아줄기세포에서 신경세포를 만들어내는 연구를 통해 파킨슨병 치료의 획기적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민간 기부가 들어나 관련 연구가 활성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혜진 기자 haejin@donga.com

나성엽 기자 cp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