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의 파주 캠퍼스 사업 신청을 승인한 파주시 결재 서류. 시장 결재칸을 맨 앞에, 실무자 결재칸을 맨 뒤에 만들었다. 사진 제공 파주시
“시장 먼저 사인하니 실무자가 뛰더라”
“시장이 책임” 결재라인 거꾸로 만들어
“민원 빨리 처리해주면 뇌물은 없어져
수백억 사업 1년 앞당기면 수십억 절약”
《파주시청이 주관하는 행사에는 지난해부터 내빈용 꽃다발과 명패가 사라졌다. 긴급한 사안이라도 결재란을 갖춰 만들던 서류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변했다. 매주 열리는 간부회의 때 종이 서류가 사라진 지도 오래다. 해외 출장 갈 때 서로 모아 주던 ‘장도금’과 돌아올 때 챙기던 선물도 없어졌다.
유화선(사진) 파주시장이 지난해부터 ‘관례문화 추방’을 지시하면서 바뀐 모습이다. 공무원이 민간 기업과 비슷한 경쟁력을 갖추려면 구태의연한 관행부터 고쳐야 한다는 인식의 결과. 관행을 고쳐야 공무원의 경쟁력이 생기며, 이 경쟁력은 주민을 위한 행정서비스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2년 전부터 시작한 ‘클로징 텐(Closing 10)’. 그해에 발주한 관급공사를 10월까지 끝내야 한다는 파주시만의 독특한 규정이다.
겨울철 공사는 부실로 이어지기 쉬우니 이듬해에 다시 예산을 투입하는 낭비를 막아야 한다는 이유다.
뇌물을 챙기지 않고 법 규정만 따르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게 공직의 특성이다. 이 같은 소극적 행정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지역 발전은 불가능하다고 유 시장은 힘주어 말한다.
“수백억 원 들여 골프장 지을 때 인허가 받는 데 3년이 걸린다죠. 1년으로 당겨 주면 사업자는 금융 부담만 수십억 원이 줄어들죠. 공무원이 이런 일로 사업체를 도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 비리는 공무원이 일부러 안 해주고 뜸들일 때 발생하죠. 빨리 해주면 절대 뇌물 안 줘요.”
이화여대 캠퍼스를 유치하는 일도 파주의 적극적 행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유 시장은 이배용 이화여대 총장이 신문 인터뷰에서 1시간 내 거리에 새 캠퍼스를 짓겠다고 밝힌 기사를 본 뒤 다음 날 찾아갔다.
파주 미군 공여지를 이용하면 장점이 많다는 내용을 적극 설명해 두 달 만인 2006년 10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일면식도 없었지만 이화여대의 비전과 파주시의 개발 계획이 조화를 이룰 수 있음을 수시로 찾아와 설명하는 모습에 이 총장의 마음이 움직였다.
유 시장은 “지역 발전의 토대가 될 대학이 들어설 기회가 생겼으니 시장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행정안전부가 공여지 개발 사업을 승인하는 데 1년여를 보내는 동안 파주시 실무부서는 중앙부처와 사전 협의를 꾸준히 진행했다.
그가 2004년 11월 보궐선거로 시장에 취임한 이후 새로운 시도를 하자 한때 공무원들이 반발하기도 했었다.
민원 부서의 8시 출근, 민원 내용의 사전 심의, 전 공무원의 기초질서 단속요원화, 시 전역의 불법 간판 정비, 전국 최초의 담배꽁초 실질적 단속, 민원 처리기간 60% 단축….
공무원은 피곤하지만 주민은 편해졌다. 민원을 처리할 때 법정 기한의 60% 이내에 끝내도록 공무원을 재촉하면서 결과가 나오는 즉시 전화로 알려주도록 했다.
개발 사업이 많은 파주시청 주변에서 ‘내가 민원을 해결해 주겠다’며 민원인과 시청 사이에 끼어들던 브로커는 사라졌다.
기초질서를 강조하며 모든 공무원이 단속요원처럼 활동하도록 만들자 주민은 주민대로, 공무원은 공무원대로 불만이었다.
하지만 유 시장 관용차가 불법 주차를 했다가 적발되자 야간에도 열심히 단속했다며 단속 공무원을 격려하고 과태료를 내자 모두가 수긍하기 시작했다.
유 시장의 직사각형 집무실 중 두 면은 역사 경제 철학 등 여러 분야의 책으로 가득하다. 틈나는 대로 책을 읽어야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는 게 TV 없이 책장으로 집무실을 꾸민 이유다.
언론사 편집국장과 사장을 거친 그는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매주 월요일 전자우편을 띄운다.
시 공무원에게 보내는 이 편지는 홈페이지에 게시된다. 공무원뿐 아니라 주민이 시정 방향을 빠르게 이해하는 통로의 역할을 해낸다.
부작용을 두려워하지 않고 민원인을 배려하는 자세, 주민 및 공무원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파주시는 ‘규제의 전봇대’를 뽑아내는 중이다.
파주=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