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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심규선]서울교육청 P국장의 못다 이룬 꿈

입력 | 2008-03-27 03:01:00


1991년 초쯤이었으니 꽤 오래된 일이다. 당시 서울시교위(지금의 서울시교육청)의 요직에 P 국장이란 분이 있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타고난 성실함과 빈틈없는 일처리로 존경을 받던 분이었다. 한마디로 ‘교육자’였다. 그런 분이 큰맘 먹고 ‘비교육적인 일’을 저질렀다. 서울시내 전 고교에 명문대 합격자 명단을 보고하라고 지시한 것이었다. 입시교육에 내몰리면서도 겉으로는 ‘전인교육’과 ‘인성교육’을 강조해 온 교육청이 은밀히 전 고교의 명문대 진학자 수를 조사한다는 것 자체가 ‘큰일 날’ 일이었다.

줄을 세우되 억울하지 않게 세워야

P 국장이 모험을 한 데는 곡절이 있었다. 당시 학생과 학부모의 ‘강남 8학군’에 대한 집착은 지금보다 훨씬 심했다. ‘위장전입’도 공공연했다. 학생들이 넘쳐나는 바람에 강남 8학군에 살면서도 타 학군 고교로 배정받은 학부모들은 서울시교위로 몰려와 데모를 벌이는 게 연례행사였다.

해마다 학부모들에게 시달리던 P 국장은 생각했다. 8학군이 정말로 그렇게 좋은 학군인가. P 국장은 9개 학군별로 연합고사 성적 우수자의 3년 후 대학진학 결과를 조사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우수 자원의 명문대 진학률은 비8학군이 더 높을지도 모른다. 실제가 그렇다면 ‘8학군병’을 고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P 국장은 생각했다.

P 국장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연합고사 191∼195점(만점 200점)의 우수한 성적으로 고교에 입학한 남학생이 3년 후 3개 명문대에 진학한 비율은 8학군이 26.4%로 9개 학군 중 4위에 불과했다. 연합고사 196∼200점의 최우수 학생의 명문대 진학률은 38.7%로 조금 높아졌지만 학군별 순위는 오히려 7위로 더 떨어졌다. 여학생은 두 그룹 모두 3위였다.

이 조사 결과는 8학군보다 학생을 더 잘 가르치는 학군이 많은데도 8학군이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이유는 단지 8학군이 우수한 학생을 다른 학군보다 훨씬 많이 배정받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관리를 안 해도 명문대에 많이 들어간다. 땅 짚고 헤엄치는 격이다. 그런데도 ‘8학군 신화’는 깨지지 않고 있다.

학교 전체의 평균 성적이 70점에서 87점으로 높아진 비강남 A고교와 95점에서 88점으로 떨어진 강남의 B고교가 있다고 치자. 어디가 더 열심히 가르쳤나. 당연히 A고교다. 그런데도 우리는 징계를 받아도 시원찮을 B고교를, 1점이 더 높다는 이유만으로 더 좋은 학교로 대접해 준다.

3학년 학급이 두 개뿐인 지방의 A고교와 10개 학급인 서울의 B고교가 있다고 하자. A고교는 명문대에 4명을, B고교는 5명을 입학시켰다. 단순히 비교해도 A고교가 B고교보다 4배나 농사를 더 잘 지었다. 그런데도 명문대에 한 명 더 넣었다고 B고교가 큰소리를 친다. 이런 착시현상에 기생하고 있는 게 바로 ‘강남 불패론’이자 ‘서울 신화’다.

며칠 전 중학교 1학년의 진단평가 결과가 공개됐다. 학교 서열화를 조장한다며 성적 공개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크다. 괜한 트집이다. 평가는 비교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비교를 안 하려면 차라리 평가 자체를 거부하는 게 당당하다.

‘기간성취도’ ‘노력진학률’로 평가하자

문제는 진단평가 이후의 ‘변화’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P 국장을 떠올린 건 이 대목에서다. P 국장은 ‘특정시점의 결과’가 아니라 ‘일정기간의 성취’를 중시했다. 대입 성적도 합격자 머릿수만 따질 게 아니라 고교 입학 때의 수준과 학교의 규모까지를 고려한 ‘노력진학률’을 평가하는 게 옳다고 봤다.

‘기간성취도’나 ‘노력진학률’이 높은 학교를 찾아내 치켜세워 주고, 행정, 재정적 지원으로 보상해 준다면 어떻게 될까. 강남과 강북의 싸움에서 강남이 깨지고, 서울과 지방의 경쟁에서 서울이 무릎을 꿇는 일이 종종 벌어질 것이다. 그러면 성적으로 줄을 세워도 덜 억울한 학교가 많아지고, 공교육에 의욕을 보이는 교육자도 늘어날 것이다. P 국장의 꿈이 그게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실천은커녕 깨닫는 데도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심규선 편집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