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주 비대칭의 단서를 잡아낸 일본 KEK 실험실의 벨 검출장치.
자연의 대칭은 아름답다. 왼쪽과 오른쪽이 똑같은 나뭇잎이 아름답고, 좌우가 S라인으로 대칭인 몸매가 아름답다. 미시세계에도 대칭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이론이 있다.
1928년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폴 디랙은 입자와 질량 같은 물리적 성질은 같지만 전하가 반대인 반입자(antiparticle)가 존재한다는 내용을 담은 논문을 발표했다. 예를 들어 음전하를 띠는 전자의 반입자는 질량은 같고 양전하를 띠는 양전자다.
디랙은 “모든 입자에 반입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으로부터 나오는 피할 수 없는 결론”이라고 했지만 당시 물리학자들은 소설 같은 얘기라고 비웃었다. 1932년 우주선(우주에서 오는 소립자 흐름)이 지구 대기와 충돌할 때 양전자가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현상이 발견되자 디랙은 일약 과학계 스타가 됐고 이듬해 노벨 물리학상을 거머쥐었다. 모든 물질이 반물질을 갖는다는 법칙은 자연계의 놀라운 대칭성을 의미한다.
하지만 대칭성에는 딜레마가 숨어 있다. 우주 탄생 초기에 입자와 반입자가 똑같은 수만큼 생성됐을 텐데, 대칭성이 유지됐다면 입자와 반입자 쌍들은 충돌해 빛을 내놓고 소멸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우주에는 양성자, 전자 같은 입자로 구성돼 있는 물질로 가득 차 있고 반물질은 찾아보기 힘들다. 결국 우주 초기에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입자보다 반입자가 더 많았다는, 즉 대칭성이 깨졌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우주에 대칭성만큼이나 비대칭이란 ‘파격’도 필수적이란 뜻이다.
우리 우주에 반물질에 비해 물질이 많다는 사실은 빅뱅이라는 대폭발의 초기 조건에 문제를 제기하며 지난 30년 이상 우주론학자들을 괴롭혀 왔다. 1973년 일본의 고바야시 마코토와 마스카와 도시히데가 우주에 반물질이 부족한 이유를 설명하는 가설을 하나 내놓았다. 이들은 방사성붕괴에 관여하는 약한 상호작용(약력)이 물질과 반물질에 다르게 작용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즉 반물질이 더 빠르게 붕괴해 비대칭(CP 대칭성)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최근 한국 연구진이 참여한 국제공동연구팀이 ‘벨’ 그룹이 비대칭 문제를 풀 수 있는 새로운 단서를 발견해 ‘네이처’에 발표했다. 일본 츠쿠바 KEK 고에너지물리실험실에 있는 가속기를 이용해 전자와 양전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킨 뒤 충돌시키는 실험을 했다. 이 과정에서 B 중간자 그룹과 그 반입자 쌍이 생성됐다가 붕괴되는데, 이 가운데 B0 중간자와 그 반입자, B+ 중간자와 그 반입자의 붕괴양상을 각각 살펴봤다. 벨 그룹은 무려 5억3500만 쌍의 B 중간자를 관찰했다.
이론적으로는 B0 중간자 쌍과 B+ 중간자 쌍이 붕괴하는 과정에서의 비대칭이 같아야 했지만 실험 결과는 달랐다. 즉 B0 중간자 쌍이 붕괴하는 비율에서 나타나는 비대칭이 -10%, B+ 중간자 쌍이 붕괴하는 비율에서의 비대칭은 +7%로 나타났던 것. 놀랍게도 벨 그룹은 B+ 중간자 쌍의 붕괴율에 나타나는 불확실성을 1.7배나 감소시켜 B0 중간자 쌍과 B+ 중간자 쌍의 붕괴 사이에서 나타나는 비대칭 차이에 대한 명백한 증거를 제시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 차이가 B 중간자 안에 미지의 입자가 숨어있다는 걸 의미하며, 이는 결국 우주에서 물질이 우세하다는 결과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우주 탄생 초기에 나타난 비대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벨 그룹과 경쟁하고 있는 미국 스탠퍼드 선형가속기센터 연구팀은 이번 실험 결과는 평범한 입자에 의해 나타날 수 있는 효과라고 반박한다. 그럼에도 이번 발견은 우주의 비대칭 문제를 풀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을 제기했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대칭과 비대칭, B 중간자와 그 반입자… 뭐가 이리 복잡하단 말인가(필자가 다 이해하지 못해 우왕좌왕한 점에 대해서는 백배사죄한다). 비록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해도 바로 여러분이 태어나기 위해 우주 속의 비대칭이 중요했다는 사실은 잊지 말자. 만일 비대칭이 없었다면 전체 우주에는 빛만으로 가득했을 뿐 우리 우주는 물론 여러분도 존재하지 못했을 테니까.
글_이충환 동아사이언스 기자 cosm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