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 위의 그는 활력 그 자체였다. 거침없는 파워로 내·외곽을 휘저었고, 경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지칠 줄 몰랐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역대 최고의 파워 포워드’로 기억한다. 유영주(37).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는 여전히 농구장을 누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손에 농구공 대신 마이크를 쥐고 있다는 것 뿐. 그는 지금 여자프로농구연맹(WKBL)을 대표하는 해설가다.
○ ‘막말 방송’에 선수들도 ‘열광’
유영주의 주무대는 WKBL 인터넷 TV. 거침없는 입담을 과시하는 ‘막말 방송’이 트레이드 마크다. 때로는 한 팀만 응원하는 ‘편파 중계’도 한다. 중립을 지키느라 애쓰는 일반 해설가들과 다르다. 그런데 그게 바로 ‘해설에 적합하지 못한 목소리를 극복하기 위한’ 유영주의 전략이란다. 원리는 간단하다. 집에서 TV를 볼 때마다 “아유, 저걸 못 하냐”하며 혼자 흥분하던 습관을 고스란히 방송으로 옮겼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었다. 첫 방송이 끝나자 “저게 뭐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보기보다 소심한 성격 탓에 상처도 많이 받았다. 다음 방송에서는 얌전하게, 남들처럼 해봤다. 이번엔 “참신해서 좋았는데 왜 바꿨냐”는 댓글이 쏟아졌다. “이래도 욕 먹고, 저래도 욕 먹고…. ‘에라 모르겠다, 내 방식 대로 가자’ 했죠.”
어이없는 실수는 따끔하게 지적했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신 상태가 바르지 못한 건 용납이 안 되기 때문”이다. 대신 최선을 다한 플레이에는 진심 어린 박수를 보냈다.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 나라도 감싸주고 싶어서”다. 강팀과 약팀이 붙으면 약자를 응원했다.
그 진심이 농구팬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방송을 시작할 때 목표가 ‘백만 안티’였는데, 이제는 다들 팬으로 돌아섰다. 미니홈피에는 팬들의 격려글이 답지하고 있다.
후배 선수들도 유영주의 해설을 좋아한다. 만나면 “언니, 언니” 하고 달려와 조언을 구하기 일쑤다. 옛 제자였던 신정자는 유영주에게 ‘욕’을 먹어야 경기가 잘 풀리는 징크스가 있다. 경기 전날 밤이면 ‘내일 욕 좀 해달라’고 전화가 온다. 현역 시절 방졸이었던 변연하는 동생처럼 아끼는 후배다. 휴가 때면 집으로 놀러와 밥을 얻어먹고 간다.
유영주는 1990년 신인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 최고의 파워 포워드로 이름을 날렸다(왼쪽). 지금은 WKBL 해설자로 변신해 인기를 모으고 있다.
○다시 태어나도 내 길은 농구
어린 시절, 언니가 신고 있는 하얀 농구화가 부러워 “나도 농구를 시켜달라”고 졸랐다. 그렇게 시작한 농구가 이제는 삶의 전부다. “힘든 사춘기 시절을 농구 덕분에 무사히 통과했어요. 온 정성을 쏟으면 그 대가를 얻을 수 있다는 걸 배웠죠. 농구장에 들어서면 아직도 가슴이 뛰고 설레요. 제 인생에서 유일하게 자랑할 수 있는 게 농구랍니다.” 그래서 “다시 태어나도 농구를 하고 싶다”는 유영주다.
내심 ‘모자(母子) 농구인’ 탄생도 꿈꾼다. 성원·성인(4) 쌍둥이 형제를 키우고 있는 그는 둘째 성인이의 농구 소질을 벌써 알아봤다.
“네 살짜리가 벌써부터 볼을 굴릴 줄 안다”며 싱글벙글 하더니 “아무래도 아이들을 임신했을 때 경기 비디오를 많이 본 게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자체 분석했다. “성인이가 좋다고만 하면 선수로 키워보겠다”는 부푼 꿈에 남편 방경일(35)씨도 동의했다. 좀 더 자라면 미국에 농구 연수도 보낼 계획. 아들이 코트 위에서 펄펄 날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흐뭇하다.
예전보다 체력과 체격이 좋아진 후배들도 그를 뿌듯하게 한다. 8월 베이징올림픽에서도 좋은 성적을 기대하고 있다. “우리 땐 피부색이 검은 선수들만 봐도 차마 발이 안 떨어졌는데, 요즘 후배들은 용병들과 직접 부딪쳐봤으니 잘 해낼 거예요.” 그도 KBS 여자농구 해설위원 자격으로 베이징을 찾는다.
공부도 하고 해설도 하니, 일거양득이 된 셈이다. 다만 걱정거리 한 가지. “인터넷과 지상파 방송은 또 다르잖아요. 발성 연습부터 다시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유쾌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 최종 목표는 단 하나 ‘지도자 복귀’
해설자로 이름을 날렸지만 평생 직업이라는 생각은 없다. 유영주의 진짜 목표는 단 하나. 지도자 복귀다. 그는 은퇴 후 2004년까지 KB국민은행 코치로 활약했다. 2002년에는 감독대행 자격으로 여자프로농구 여성감독 첫 승을 올리기도 했다. 아쉽게 지휘봉을 놓았지만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라 여기고 있다.
쉽지는 않다. 여전히 여자농구 감독은 남자들의 전유물이다. 왕년의 스타 박찬숙은 지난해 감독선임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았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내기도 했다. 유영주의 어깨가 무겁다. “해설도 매력 있지만 제가 할 일은 따로 있는 것 같아요. 대선배들이 늘 격려해주세요.”
준비는 늘 돼 있다. 여성 감독의 지도력을 인정받기 위해 항상 공부한다. 해설자 경험도 자양분이 됐다. “선수 때, 코치할 때, 그리고 지금 경기를 보는 게 다 달라요.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됐어요.”
‘제 2의 유영주’를 길러내는 것도 목표다. 신세계 김정은이 한 손으로 외곽슛을 성공시키는 걸 보고 자랑스러웠다는 그는 “그런 선수를 갈고 닦아 더 좋은 선수로 키워내는 게 지도자들의 책임”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웃음이 떠나지 않던 그의 눈매에 매서운 기운이 감돌았다. 천상, 농구인이다.
용인= 배영은기자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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