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에 길거리로 나가면, 이루 헤아리기 벅찰 정도로 수많은 사람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저렇게 많은 사람이 도대체 지금 이 시각 무엇 때문에 어디로 가고 있는지 항상 궁금했습니다. 그 궁금했던 일을 결행하기로 합니다.
화창한 어느 봄날, 길거리로 나가 체형과 나이가 나와 비슷한 한 사내를 임의로 선택해서 뒤를 밟기 시작합니다. 출발은 신촌 로터리에 있는 어떤 극장 앞이었습니다. 등 뒤에서 바라본 사내의 걸음걸이는 매우 활달하고 자신감에 넘쳐 있었습니다. 뚜렷한 목적지가 없는 사람이라면 그토록 담대한 걸음걸이를 연출해 낼 수 없을 것입니다.
사내는 신촌에서부터 시작해서 아현동을 거쳐 신문로에 당도할 때까지 계속 활기차게 걸었습니다. 그만한 거리라면 필경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할 법한데, 그는 건강을 생각해선지 계속 걷기를 고집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종로 1가를 거쳐 5가에 당도했습니다.
나는 시계를 보았습니다. 신촌에서부터 시작하여 종로 5가에 당도할 때까지 3시간 가까운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들렀던 건물이나 만났던 사람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길가의 벤치나 길턱에 앉아 쉰 적도 없었습니다. 다만 주변 가게들의 쇼윈도나 노점상의 좌판들에 힐끗힐끗 눈길을 주었을 뿐입니다. 그때 비로소 나는 아뿔싸 하고 말았습니다.
하필이면 할 일 없는 놈팡이일 뿐 아니라, 무기력과 수치심을 감추기 위해 과장과 허세를 일삼는 사내를 미행한 내 졸렬한 안목에 실망한 것입니다. 그때 저만치 앞서 가던 사내가 문득 뒤돌아섰습니다. 사내는 이제 출발했던 신촌 쪽으로 발길을 돌릴 것이 분명했습니다.
낭패했던 나는 그 순간 주저했습니다. 사내의 뒤를 계속 밟는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선택해서 미행하는 일을 계속할 것인지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길거리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었고, 뒤돌아선 사내는 몇 걸음 만에 나와 정면으로 딱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사내는 나와 마주치는 순간 다짜고짜 내 멱살을 뒤틀어 잡았습니다. 그리고 할 일이 없으면 잠이나 자지, 왜 자기를 미행하느냐며 내 따귀를 보기 좋게 갈기는 것이었습니다. 사내의 주먹질에 턱이 얼얼했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놀란 것은 내 따귀를 때린 그 사내가 바로 나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
60평생 동안 언제나 똑같은 모습으로 거울 속에 담겨 있던 나 자신의 얼굴이 내 따귀를 때리고 있었습니다. 그 사내가 바로 나였고, 따귀를 맞은 나는 그 사내의 하찮은 짝퉁에 불과했습니다. 나에게 있어 그날은, 구차스러운 나 자신을 미행했던 쓰라린 하루였습니다.
김주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