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하게 말해서 동물과 사람 사이에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개념을 형성할 수 있는 자질이 주어졌다는 데 있다. 그리고 우리는 사고하는 언어를 통해서 우리의 자질을 표현하고 있다. 사람은 끊임없이 자연의 현상 뒤에 숨어 있는 것처럼 보이고 그 현상을 통합해 주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을 표현하는 관념들을 창조한다. 이와 같은 관념의 창조와 언어 안에서의 상호작용이 상상력을 만들어내는 일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과학도 시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상상 활동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개성을 찾는 손쉬운 방법은 내가 남과 얼마나 다른지 파악하는 것이다. 타자와 구분 지으며 인간은 끊임없이 자아를 찾으려 했다. 물론 기계에도 개성은 있다. 내 자동차도 나이를 먹고 어딘가에 긁혀 가며 그것만의 습성을 얻는다. 같은 모델의 다른 자동차들 가운데서도 내 차를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기계의 경험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수동적이고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것이다.
반면 인간의 자아는 두뇌 속에 고정된 무언가가 아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자아의 경험은 변화무쌍하다. 하지만 이 경험들이 인간의 개성으로 되기 위해서는 지식으로 변환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저자는 자아가 지식을 얻는 방법은 두 가지라고 결론짓는다. 과학과 예술이다. 이제까지 상반된 영역에 속한 줄 알았던 과학과 예술의 벽이 허물어진다.
절대적인 객관성과 엄격한 체계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던 과학은 이 책에서 새롭게 정의된다. 저자는 예술의 창작활동과 마찬가지로 과학적 발견이라는 활동도 상상력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이런 까닭에 과학은 시 못지않게 모호하다.
이유는 과학도 자연을 기술하기 위한 하나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과학은 ‘공학적인 설계도’가 아닌 ‘자연의 기계적인 메커니즘을 표현하는 언어’다. 과학자는 우리가 실제로 보는 자연 현상을 과학용어로 표현하고 이 용어들은 또 한 번 동일한 현상이 목격됐을 때 검증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단지 우리는 과학의 애매모호함을 애써 모른 척할 뿐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문학에서는 애매함을 내버려 둬도 된다. 예술은 인간이 느끼는 수많은 감정을 보여주며 어떤 윤리적 판단도 거부한다. 우리는 그저 예술 작품에 등장하는 상황과 인물에 공감하며 ‘자신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의 답을 얻는다.
이런 까닭에 과학과 예술은 둘 다 자연과 인간의 삶에 대해 완전무결한 설명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점이 나를 나답게 만드는 핵심 열쇠가 된다. 자연의 변화를 지켜보며, 소설 속 인물에 공감하며 나의 정체성도 끊임없이 옷을 갈아입는다.
저자 제이콥 브로노프스키는 1945년 원자폭탄의 효력을 연구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했다. 하지만 폭탄이 투하된 나가사키 공군기지의 처참한 광경을 목격한 후 ‘과학과 인간 가치’에 매달렸다. 이 책은 ‘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평생 매달린 저자의 1965년 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결국 이 책의 메시지는 과학과 예술의 이면을 직시하자는 것. 그리고 이를 나 자신에 대한 물음의 해답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