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원로자문회의, 국가안전보장회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국민경제자문회의의 공통점은? 정답은 모두 헌법(90∼93조)에 명시된 대통령의 자문기구라는 것이다. 그런데 국가원로자문회의(원로회의)와 나머지 세 자문기구 사이엔 두 가지 차이점이 있다.
▷하나는 나머지 세 기구는 모두 ‘헌법에 따라’ 조직과 직무범위를 규정한 개별법이 있지만, 원로회의를 뒷받침하는 법률은 없다는 점이다. 그냥 헌법 조항만 있을 뿐이다. 다른 하나는 나머지 세 기구의 의장(議長)은 대통령이지만, 원로회의 의장은 헌법상 ‘직전(直前) 대통령’이 맡도록 돼있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비밀은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있다. 그는 1987년 10월 헌법을 개정해 원로회의 조항을 만든 뒤 퇴임 바로 전날인 88년 2월 24일 후속 법률을 제정했다. 그는 상왕(上王)이 되길 원했다. 그러나 백담사로 유배를 떠나면서 의장직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고, 원로회의법도 1989년 3월 폐지되고 만다.
▷이후 대통령들은 국가적 현안이 있을 때 ‘각계 원로’들을 초청해 의견을 듣는 형식을 취했다. 헌법을 개정해 ‘직전 대통령 의장’ 조항을 없애지 않는 한 아마 원로회의가 실제로 구성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연히 ‘각계 원로’의 면모도 정권의 성격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강만길, 백낙청, 권근술 씨 등을 자문위원단으로 위촉하자 “원로들까지 편을 가르나”라는 소리가 나왔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제 강신석, 강영훈, 고건, 김진현, 김창성, 남덕우, 박태준, 서영훈, 신인령, 이인호, 이홍구, 조순 씨를 초청해 ‘원로 오찬’ 행사를 가졌다. 강영훈 전 총리는 “최근엔 이런 초청을 받은 적이 없다. 정신적으로 배가 부르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간 대화 내용을 보면 ‘사진용’ 모임이라는 인상이 짙다. 원로들만이 할 수 있는 ‘직언(直言)’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국무총리 출신이 5명이나 되던데 아무래도 직언은 힘들지 않겠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눈에 띄지 않게 원로들을 불러 막걸리 잔을 나누며 진짜 조언을 구했다. 그런 실사구시가 필요하다.
김창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