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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74년 긴급조치 4호 발동

입력 | 2008-04-03 03:01:00


1974년 4월 3일 유신정부가 긴급조치 4호를 발동했다. 긴급조치 4호는 민주화를 요구하며 유신체제를 반대하는 여론이 거세지자 위기감을 느낀 정부가 단행한 조치였다.

1973년 8월 일본 도쿄에서 벌어진 김대중 피랍 귀국사건으로 고조된 유신 반대 여론은 10월 서울대 문리대생의 유신반대시위, 12월 장준하 백기완 씨 등 재야인사 30여 명의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운동’, 이듬해 1월 이희승 씨 등 문인 61명의 ‘개헌서명 지지선언’으로 확산됐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1974년 1월 8일 긴급조치 1, 2호를 공포하며 비상군법회의를 설치했고 4월 대학생들의 대대적인 집회가 예상되자 긴급조치 4호로 맞섰다.

긴급조치 4호로 1024명이 조사를 받아 윤보선 전 대통령 등 재야인사와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관련자 180명이 구속 기소됐고, 배후로 지목된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 도예종 씨 등 8명은 사형이 선고됐다. 이들은 선고 다음 날인 4월 9일 형이 집행됐다. 사형 선고가 내려지고 24시간 내에 형이 집행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국제법학자회의는 이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했다.

중앙정보부는 민청학련 주동자들이 ‘4단계 혁명’을 통해 노동자·농민에 의한 정부를 세울 것을 목표로 일본공산당과 결탁해 정부를 전복하려 했다고 발표하며 사건을 일단락지었다.

시간이 흐른 뒤 나온 관련자들의 증언은 달랐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서 당시 핵심 관련자였던 이용택 전 중앙정보부 6국장 등은 “적화 통일 전술을 써서 우리 정부를 타도하고 사회주의 정부를 수립하고자 했다는 것을 입증하라는 지침이 있었다”고 말했다. 수사 과정에서 전기고문을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당시 민청학련을 변호했던 강신옥 변호사는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 사건에 대해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자의적 요구로 수사 방향이 미리 결정돼 집행됐으며 인혁당이나 민청학련이 무리하게 반국가단체로 만들어지는 등 사건의 실체가 과장됐다”고 조사 결과를 1월 31일 발표했다.

1월 23일 서울중앙지법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연루돼 사형을 선고받았던 고 우홍선 씨 등 8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긴급조치 위반혐의로 사형이 집행된 지 33년 만의 일이었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