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나무 숲을 지나 휴양림 매표소에 내렸다. 나무 냄새가 코를 찌른다. 상큼한 공기는 머릿속까지 맑게 한다. 전나무 사이로 투명한 햇살이 비치고 부드러운 바람이 뺨을 스친다. 졸졸졸 물 내려가는 소리가 정겹다. 아이들은 아빠, 엄마 손을 잡고 나뭇잎이 쌓여 양탄자처럼 푹신한 숲 속 길을 걷고 있다.
30일 강원 횡성군 둔내면 청태산 자연휴양림.
휴양림을 여름의 피서지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휴양림에 한 번도 안 가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휴양림을 자주 다니는 마니아들은 봄에 만나는 휴양림을 으뜸으로 꼽는다. 나무에 새순이 돋고 곳곳에 들꽃이 피면서 스며드는 숲의 봄빛이 얼마나 곱고 화사한지를 아는 사람들이다. 주말이 되면 빈 방이 없다. 휴양림에서 하룻밤을 보내면서 봄의 정취를 온몸으로 느끼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전국에는 산림청에서 만든 국유자연휴양림 34개, 지방자치단체에서 만든 휴양림 56개, 개인이 운영하는 사설 휴양림 17개 등 모두 107개의 휴양림이 있다.
상쾌하고 맑은 공기, 빽빽이 들어선 나무, 통나무집이라는 공통 분모가 있지만 휴양림이라고 다 똑같지는 않다.
아무 생각 없이 쉬었다 오고 싶다면 한적하고 경치가 좋은 휴양림이 좋다. 아이들에게 자연을 알게 하고 싶다면 숲 해설가가 있는 자연휴양림을 권한다. 온 가족이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함께 땀 흘리기에 적당한 휴양림이 있는가 하면 아토피나 비염 등 쉽게 고쳐지지 않는 질병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특히 좋은 휴양림은 따로 있다.
국립휴양림관리소의 도움을 받아 전국의 국유 휴양림을 테마별로 나누어서 소개한다.
○ 천혜의 경관 자랑하는 휴양림
통나무집에서 창문을 열어 놓고 바깥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더는 다른 게 필요 없는 휴양림이 있다.
강원 인제군 기린면에 있는 방태산휴양림이 그런 곳이다. 첩첩 산중에 숨어 있어 사람들이 찾기 힘든 곳이지만 경치만 놓고 보면 국내 휴양림 중에서 최고다.
원시림처럼 깊고 울창한 숲은 자연의 신비감을 더해 주고 크고 작은 폭포에서 물이 흘러 내려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울산 울주군 상북면에 있는 신불산폭포휴양림은 기암괴석과 다양한 수종의 천연림이 어우러져 태고적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휴양림 안에 있는 파래소 폭포는 폭포 중심에 명주실 한 타래를 풀어도 바닥에 닿지 않는다는 전설이 있을 만큼 깊고 푸르다.
○ 휴양과 레저를 함께 즐길 수 있는 휴양림
쉬러 갔지만 아무것도 안하고 있자니 좀이 쑤시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거나 산악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휴양림을 찾는 게 좋다.
1998년 전국 최초로 조성된 자연 휴양림인 대관령휴양소에는 다양한 산책로가 마련돼 있어 산책만 해도 심심할 틈이 없다. 휴양림 안에 있는 숯가마를 이용해 참나무 숯을 직접 구워 볼 수 있고 운이 좋으면 숯을 꺼낸 가마에 들어가 찜질도 할 수 있다.
경기 양평군 옥천면 중미산휴양림에서는 오리엔티어링을 할 수 있다. 오리엔티어링은 지도와 나침반을 이용해 일정한 중간 지점을 통과해 목적지에 빨리 도달하는 산악 레포츠다.
강원 정선군 정선읍에 있는 가리왕산휴양림은 임시 도로를 따라 산악마라톤이나 산악자전거(MTB) 등 산악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 있다.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경북 울진군 서면에 있는 통고산휴양림에 가볼 만하다. 통고산 정상(해발 1067m)에서는 동해 일출을 볼 수 있다.
○ 몸과 마음이 튼튼해지는 휴양림
울창한 숲에 들어갔을 때 상쾌한 기분이 느껴지는 것은 나무에서 뿜어내는 ‘피톤치드’ 성분 때문이다. 삼림욕이 몸에 좋은 이유도 피부염증 방지, 신경안정, 정신 피로해소에 효과가 있는 피톤치드 때문이다. 나무 중에서 피톤치드를 가장 많이 뿜어내는 나무가 편백이다. 경남 남해에 남해편백휴양림은 이름 그대로 편백나무가 빼곡히 들어선 휴양림이다. 이곳에는 아토피 피부염으로 고생하는 아이가 있는 가족들이 자주 찾는다.
강원 횡성군 둔내면 청태산자연휴양림도 피톤치드를 많이 내뿜는 잣나무 숲이 우거져 있어 아토피로 고생하는 어린이들에게 좋은 곳이다. 강원 홍천군 내면 삼봉자연휴양림은 약수로 유명한 곳이다. 휴양림 안에 있는 삼봉약수터는 15가지 약수 성분이 있어 위장병과 당뇨 등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기 양평군 단월면 산음자연휴양림은 오염되지 않은 맑은 공기를 자랑한다. 서울대 산림과학부가 지난해 환경 측정을 한 결과 대기오염 물질과 발암 물질이 전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 자연을 배우는 교육여행
경북 청도군 운문면 운문산휴양림에서는 벽계수가 흐르는 계곡을 거닐면서 숲 해설을 들을 수 있다. 개암나무 열매로 헤이즐넛을 만들고 물푸레나무는 물에 넣으면 물이 파랗게 보이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는 숲 해설가의 설명에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경기 가평군 설악면 유명산휴양림에는 2만4000평 규모의 자생 식물원이 있어 자녀들에게 생태교육을 할 수 있다.
전남 장성군 북이면 방장산휴양림에서는 아이들이 편백나무나 미송을 이용해 애완견 집을 만들 수 있고 나뭇잎과 꽃잎을 이용해 손수건에 염색을 할 수도 있다.
글·횡성=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사진·무주=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디자인=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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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촬영 : 박영대 기자
▲ 촬영 : 박영대 기자
■ 휴양림 이용하려면
산림청에서 운영하는 휴양림은 통나무집 시설도 깨끗한 편이고 4인용이 주말 기준으로 5만5000∼7만 원 선으로 저렴해 인기가 많다. 문제는 예약하기가 힘들다는 것.
국유자연휴양림의 경우 성수기인 7월과 8월은 추첨을 통해, 그 외 기간은 인터넷 홈페이지(www.huyang.go.kr)를 통해 선착순 예약을 하는데 주말 예약은 성수기, 비수기 가리지 않고 하늘의 별따기만큼 힘들다.
선착순 예약은 경기, 강원 지역 휴양림은 매달 3일 오전 9시에 다음 달 예약을 하고 그 외 지역은 매달 1일 오전 9시에 다음 달 예약을 한다. 인기 휴양림의 경우 주말 예약은 1분 만에 마감된다. 경쟁률이 수백 대 1이 넘는 성수기 추첨은 운이지만 비수기 주말 예약은 정성만 있으면 가능성은 높아진다.
‘휴양림 고수’들은 오전 9시 전에 미리 접속해서 예약에 필요한 모든 항목을 입력한 뒤 클릭만 하면 예약이 가능한 상태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8시 59분에서 9시로 바뀌는 순간 클릭을 한다.
오전 9시에 한다고 해서 예약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름난 휴양림은 ‘전국의 무림 고수’들이 한꺼번에 이런 방법으로 예약을 하기 때문에 컴퓨터 시스템에 문제가 있으면 예약을 못 할 수도 있다.
예약을 못 했을 때는 꾸준히 휴양림 관리소 홈페이지를 검색하면 예약 취소 분을 건질 수도 있다. 김성태(47) 씨는 이런 방법으로 3개월에 두 번 정도 휴양림을 이용한다. 한 달 전에 미리 예약을 받기 때문에 사정이 생겨서 취소하는 사람이 많은 점을 노리는 것이다.
■ 삼림욕 효과 높이려면
휴양림에서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좋지만 삼림욕 효과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삼림욕 하기에 가장 좋은 조건은 ‘맑고 바람이 없는 여름날 오전, 침엽수가 많은 휴양림을 산책하는 것’이다. 삼림욕을 즐기려면 침엽수가 많은 휴양림을 찾는 게 좋다. 몸에 좋은 피톤치드가 오전에 활엽수보다는 침엽수에서 많이 나오고 특히 소나무류에서 많이 발생된다. 피톤치드는 오전 10시부터 낮 12시 사이에 가장 많이 나온다.
산 정상까지 가지 않고 산 중턱에서 쉬다 오는 것도 권할 만하다. 산꼭대기에 가까이 가면 하늘을 가리는 키 큰 나무가 없어서 피톤치드의 방출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또 바람 부는 날보다는 바람이 없을 때가 더 낫다. 바람이 불면 공기 중에 있던 피톤치드가 바람에 날려 사라진다. 비가 와도 피톤치드가 빗방울과 함께 땅에 떨어지고 밤이 되면 낮보다 10%밖에 나오지 않는다.
피톤치드는 1, 2월에 가장 적게 나오고 4월부터 배출량이 늘기 시작해 7월과 8월에 최대치를 나타낸다. 방출량을 비교해 보면 여름이 겨울의 5배 이상, 많게는 10배 이상이다.
‘나를 살리는 숲, 숲으로 가자’를 쓴 윤동혁 씨는 “걷는 게 힘들면 울창한 숲 속에서 쉬다가 돌아가도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테르펜은 날아다니기도 하지만 나뭇잎에서 떨어진 후 대부분 땅으로 가라앉기 때문에 숲에서 배낭을 베개 삼아 한숨 자고 일어나면 그 사이에 피톤치드 목욕을 하게 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