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집의 아가씨는 예쁘지 않았다. 꽃집에서 일하는 걸 마냥 즐거워하지도 않았다. 가끔 꽃집을 들르는 소설가에게 하소연하기도 했다.
“꽃이 참 예뻐 보이죠? 그런데 돌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밑동이 금세 시꺼멓게 되고, 미끌미끌해지고….”
모든 화사함 뒤에는 그것을 위해 희생되는 추함이 있다. 사방이 꽃인 작은 공간에서 온종일 지내면서 꽃집의 아가씨는 일찍이 꽃의, 인생의 비극을 깨달았다. 서하진(48) 씨의 단편 ‘모델하우스’(소설집 ‘라벤더 향기’ 중)는 그렇게 나왔다. 꽃집을 하는 여자가 인생 대부분의 불행 중에 잠깐 행복을 느끼는 이야기다.
“2000년 초였어요. 그때 그 꽃집은, 왜 있잖아요, ‘꽃’이라는 글자에 동그라미 친 간판이 걸린 집이었는데. 요즘은 꽃집이라고 안 하고 플라워숍이라고 하죠.”
한때 ‘서울화원’이었던 서울 세종문화회관 옆 꽃집도 ‘서울플라워’로 이름이 바뀌었다. 신경숙(45) 씨의 장편 ‘바이올렛’의 무대가 된 곳이다.
“20대 때 밤에 문 닫힌 그 꽃집 앞을 자주 다녔어요. 광화문은 밤에도 불빛으로 환하니까, 꽃집 안쪽이 보여요. 그야말로 도시 한복판에 꽃이 한가득 피어 있는 공간인데, (꽃들이) 좀처럼 도시에 발을 디디지 못하는 느낌이 들어서….”
마당에 심은 수선화가 피어나고 튤립 순이 올라왔다는 소식을 전하는 신 씨. 그는 “꽃은 결국 제 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지 않는가”라면서 “짧은 시간이지만 헌신적으로 사는 모습이 와 닿아, 꽃 선물을 받으면 최선을 다해 마지막까지 돌본다”고 말한다.
‘별 필요도 없고 나중엔 치우기도 곤란해’ 아줌마들에게 꽃은 은근히 ‘비호감’의 대상이지만 그 비실용적 낭만성이 꽃의 아이덴티티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서하진 씨가 들려준 것처럼 꽃집 앞에서 꽃을 살까말까 망설이는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사연이 있다. 졸업식이나 시상식 같은 딱 떨어지는 계기가 아니고선, 꽃을 준다는 행위는 특별한 마음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이나 미안함, 따뜻한 위로 같은.
아직도 꽃집 앞을 서성인다는 시인 김용택(60) 씨. 꽃집에 들어서면 “산당화는 안사람이 좋아하는 꽃인데…내 시에도 썼는데…” 하고 조근조근 얘기하면서 꽃을 산다. 요즘 사내들처럼 뭉툭하게 “장미꽃 열 송이!” 하는 것보다 얼마나 정감이 있느냐며 김 씨는 웃음을 터뜨린다. 김 씨의 시 ‘내가 아는 그 꽃집’(‘문학사상’ 4월호에 수록)의 몇 구절. 아내와 연애할 때 꽃집 옆 골목에서 살짝 뽀뽀하던 순간을 떠올리며 썼단다.
‘그대가 가만히 바라보는 그 꽃이 나여요.//그 꽃이 나랍니다.//웃어주세요.//“여긴 사람이 없네.” 그 호숫가 호젓한 들길 모퉁이 돌아서며//입 맞출 때, 눈이 감겨오던 그때, 물에 내리는 물오리들 소리 가만히 들렸지요.’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