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위기 고비 지나자 세계 실물경기 위기론
수출의존도 높은 한국 더 타격
국제 금융시장이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 충격에서 간신히 회복할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한국 경제에는 ‘실물경기 침체’라는 후폭풍이 다가오고 있다.
미국의 금융부문에서 발생한 부실이 소비, 고용 등 실물경제로 전이되면서 경기 침체가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을 비롯해 수출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의 실물경기가 압박을 받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민간의 전문가들은 1분기(1∼3월)에는 5% 후반의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2분기(4∼6월)나 3분기(7∼9월)부터는 3%대 성장률로 추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하고 있다. 세계 경제 성장률이 당초 예상치를 훨씬 밑돌 것이라는 전망도 뒤따르고 있다.
○ 세계 경제성장률 하향 조정
국제통화기금(IMF)은 3일(현지 시간) 올해 세계 경제성장 전망치를 1월 4.1%에서 0.4%포인트 내린 3.7%로 전망했다. 3.7%는 2002년(3.1%) 이후 가장 낮은 성장률이다.
IMF는 미국의 주택시장의 침체와 그로 인한 신용 위축이 세계경제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IMF 사이먼 존슨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경제성장이 둔화돼 현재 ‘사실상 멈춰 있는 상태’에 이르렀고 앞으로 주택과 신용시장에서 어려움이 심화돼 몇 분기에 걸쳐 약세를 지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2일 의회에서 “올해 상반기에 국내총생산(GDP)이 크게 성장하지 않을 것 같이 보이고 오히려 약간 위축될 수도 있다”고 말해 공개석상에서 경기 침체 가능성을 처음으로 시사했다.
한국금융연구원 신용상 연구위원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진정됐다는 평가는 전적으로 금융부문에 한정된 것”이라며 “금융 부실이 실물로 파급되면서 미국의 주택경기 침체, 소비와 기업투자의 감소, 고용부진으로 이어져 경기 침체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 미국 수입 감소로 한국도 충격
미국 경기 침체는 국내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성장률 전망도 잇따라 하향조정되고 있다.
4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JP모건, 골드만삭스 등 주요 해외 투자은행 16곳에서 제시한 올해 한국 성장률 평균 전망치는 4.5%로 지난해 말 전망치(4.9%)보다 0.4%포인트 떨어졌다. 씨티그룹(3.9%)과 UBS(3.6%)는 3%대의 낮은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내놓았다.
한국무역협회 산하 국제무역연구원의 김재홍 수석연구원은 “미국 경제의 60∼70%는 소비에 의존하는데 이를 대부분 해외 수입으로 충당한다”며 “소비가 줄면 수입도 감소해 한국 수출도 타격을 받게 되고 2차적으로는 미국 수출이 많은 중국 등 신흥국가에 대한 국내 부품소재 등의 수출도 덩달아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세계교역물량이 1% 감소하면 국내 경제성장률은 연간 0.57%포인트 하락하고 경상수지는 11억 달러가 악화된다.
국내 경제는 원유 등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물가 불안에다 3개월째 경상수지 적자가 계속되고 있다. 월별 신규 취업자수(전년 동월 대비 증가인원)도 지난해 11월 28만 명에서 올해 2월에는 21만 명으로 감소해 고용 불안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 딜레마에 빠진 실물경기대책
정부는 경기 부양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금리와 환율정책은 현재 ‘뜨거운 감자’다. 금리 하락이나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가치 하락)을 용인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면 물가가 관리목표치(3.5%)를 넘어 4% 이상으로 치솟을 수 있다.
정부 재정을 들여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사업을 하면 고용이 늘어나 경기 회복에 일부 기여할 수 있지만 전체 경제 규모가 커져 재정 투입의 효과가 눈에 띄게 나타나지 않으며, 효과가 있다 해도 시차가 크다.
이 때문에 정부는 규제를 완화해 민간의 투자심리를 부추기는 정책을 우선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투자를 유인할 수 있는 규제 해제 내용이 많지 않은 데다, 해외 수요가 가라앉는 상태에서는 규제가 완화돼도 기업들이 과감한 투자 확대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온다.
여기에다 국내는 물론 해외펀드까지 수익률이 좋지 않아 소비자들의 심리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는 “정책을 한 방향으로 몰고 가면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는 어려운 상황인 만큼 성장과 안정을 적절히 조율할 수 있는 정책의 미세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