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신달자 지음/260쪽·9500원·민음사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는 시인 신달자(65·사진) 씨가 ‘불바다의 결혼생활’을 고백하는 에세이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시인이지만 한 사람의 아내가 되었을 때의 그의 삶은 고통과 절망 배우기였다.
시인은 남편의 죽음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제자인 희수에게 지난날을 돌아보는 형식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떤 소설, 어떤 영화보다도 극적이다. 1977년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은 한 달 만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났지만 반신불수가 됐다. 수발 끝에 남편은 가까스로 몸을 추스르고 학교에 복귀하지만 시인의 손을 계속 필요로 한다. 딸아이 셋을 키우면서 남편을 돌보는 일도 힘겨운데, 시어머니마저 넘어져서는 크게 다쳐 병상에 누우셨다.
뇌졸중 후유증에 시달리는 남편은 아내를 때리고 자살기도를 하며 정신병원을 들락거린다. “나는 그동안 소리 없는 총기를 구하고 다녔다. 그래, 물론 그의 심장을 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말이야. 얼마나 그가 죽기를 기다렸겠니”라는 고백을 할 만큼 아내의 가슴은 꺼멓게 타들어갔다.
매일이 지옥인 생활을 견디게 한 것은 종교였다. 신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신으로 인해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되었다고 시인은 털어놓는다. 24년 남편을 돌보면서 그는 “결혼은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화해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놓지 않는다. 문학과 공부에 대한 열정도 식지 않아 그는 대학원에 진학하고 교수가 되며 베스트셀러 작가로도 이름을 날린다.
끝내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그 남편이 신 곁에서 평온하길 소망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가졌던 시인. 그러나 그에게 닥친 것은 유방암 판정이다. ‘신이 왜 나에게만 잔인한가’ 부르짖으면서도 시인은 병과 맞서면서 “결국 영원히 싸우고 사랑할 것은 삶”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때로는 격정적으로, 때로는 담담하게 전하는 시인의 삶은 눈물겹다. 고통의 나날들이 지난 뒤 “아름다운 일상이 중요하다는 것을, 삶을 꼼꼼하게 살아야겠다는 것을 알았다”는 신 씨의 고백은 독자들을 숙연하게 한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