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회장 특검 출두하던 날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삼성특별검사 사무실에 출두해 300여 명의 취재진 앞에서 답변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5일 오전 1시경 11시간의 강도 높은 조준웅 특검팀의 조사를 받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들어올 때와는 달리 안경을 쓰고 다소 굳은 표정으로 특검팀 사무실을 나왔다.
이 회장은 기자들의 질문에 “국민 여러분께 대단히 죄송하다. 특검 수사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며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불법 경영권 승계, 차명계좌 및 비자금, 로비 의혹 등을 인정하느냐”는 질문에는 “건수에 따라, 전부 다는 아니고…”라고 답했다.
이에 앞서 이 회장은 오후 2시 서울 용산구 한남동 특검팀 건물에 도착했을 때 300여 명의 국내외 취재진이 몰려 있었다. 특검 수사 후 가장 많은 인원이었다.
특검팀 사무실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던 진보신당 관계자들이 “이 회장을 구속하라”며 구호를 외치기도 했지만 충돌은 없었다.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270여 명의 경비 병력을 배치했다.
특검팀 관계자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동문서답도 하지 않고 대답을 잘하고 있다. 질문의 취지를 알아듣고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고 조사 분위기를 전했다. 이 회장은 저녁 식사로 배달된 자장면과 물만두를 수사진과 함께 먹었다.
감색 정장 차림의 이 회장은 조사를 마치고 귀가하면서 경직된 표정으로 준비한 듯한 얘기를 먼저 시작했다. 다음은 이 회장과의 일문일답.
―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과 실권 지시했다는 것을 시인했나?
“국민 여러분께 말을 먼저 하겠습니다. 특검 수사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며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에버랜드 관련 지시한 게 맞다는 것인가.
“내가 지시한 건 없어요.”
―그럼 어떤 부분을 시인했나?
“내 입은 하나고 질문은 다섯 개니…”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 영상 취재 :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재계-광고단체연 “특검 연장땐 경제 악영향 우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4일 조준웅 특별검사팀에 출석하자 재계는 삼성뿐만 아니라 한국기업의 대외신인도 하락을 우려하면서 특검 수사를 조속히 종결할 것을 희망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상공회의소 등 주요 경제단체는 이날 공식 성명을 내지는 않았지만 이 회장의 특검 출석 소식에 어두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정병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은 “한국 대표기업인 삼성의 대외신인도 하락은 한국 경제에도 큰 타격”이라며 “특검 수사를 최대한 빨리 끝내 후유증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은 최악의 상황으로 여기던 이 회장의 특검 출석이 현실화하자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삼성의 한 임원은 “설마 했는데 참담하고 혼란스럽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특검이 끝나야 투자계획이나 경영지표 등을 주주들에게 좀 더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1분기(1∼3월) 실적 발표일을 관행(4월 둘째 주 금요일)보다 2주일 늦춰 이달 25일로 잡았다.
한편 특검 수사를 빨리 끝내 달라는 탄원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광고단체연합회는 삼성 특검의 조속한 마무리를 촉구하는 탄원서를 3일 특검에 제출했다고 4일 밝혔다.
이에 앞서 2일에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도 “문화예술 분야의 위축을 막기 위해 삼성 특검의 파장을 최소화해 달라”는 내용의 청원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