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보라색 바지 입고 돌 때 되게 멋있었는데, 기억나? 그 바지 동대문에서 샀지?”
“앗. 그거 동대문에서 산 거 아냐. 그리고 나만 잘 춘 건 아니잖아? 다 잘 췄지.(으쓱)”
형들이 멋있어서, 형들만 믿고 무작정 춤을 시작했다.
3월 29일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린 비보이 대회 ‘R-16 코리아 스파클링, 경기 2008’의 우승팀 ‘갬블러 크루(Gambler Crew)’의 막내 최동욱 씨(19)는 언제나 형이 최고다. 형이 없었다면, 형들의 비보잉이 없었다면 인생은 참 재미없었을 테니깐. 형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꽤 지루하게 살고 있을 거다. 갬블러가 한창 이름을 날리던 무렵, 최동욱 씨는 오디션을 봤다. 아주 잘 춘 건 아니다. 그래도 잘 출 수 있다는 가능성을 형들에게 보여줬다.
규상: 동욱아! 너 처음 들어왔을 때 춤 별로였다. 그거 알아? 그런데 귀엽더라고… 참 기특했지. 열심히 하려는 게 딱 보였으니깐.”
동욱 : 50대 1 ! 경쟁률 높았어. 50대 4였나?
규상 : 그 때 다른 사람들은 기본 스타일만 보여줬는데, 너는 다른 걸 보여주려고 애썼잖아. 비보이는 계속 춤을 창조해야 하는데, 네가 잘 할 거라고 믿은 거야.
동욱 : 비보이 사이트에 밤마다 들어가 연구하고. 배틀하는 거 상상하고 그러는데…
규상 : 너 우리 동경했다고 그랬잖아.
동욱 : 친구들 세 명이서 ‘88크루’로 활동했는데 그 때부터 형네 팀에 들어오고 싶었어. 용마산 배틀 대회에서 처음으로 1등하면서 자신감도 얻었거든. 형은 가장 기억나는 배틀이 언제야?
규상 : 난 작년에 미국 ‘프리스타일세션’에서 준우승한 게 제일 기억에 남지. 그 대회는 내 10대 시절 꿈이었어. 9년 전이었나? 외국 자료 얻기도 하늘의 별따기였는데… 하이텔· 나우누리 그런 거 쓸 때 있잖아. 어렵게 수소문해서 거의 다 ‘썩어가는’ 비디오테이프 구했거든. 그런데 테이프 플레이하고서 진짜 심하게 충격 받았어. 저렇게 잘 할 순 없다고… 프리스타일세션 녹화 테이프였어. 그 대회에 내가 나가게 됐으니 기분이 참 묘하더라. 그때 ‘갬블러’가 참 잘 했거든. 미국 텃세 때문에 우승은 못 했지만. 그게 거기 대회 10주년 기념 공연이라서 한국팀이 우승하긴 힘들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거기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갬블러가 더 잘 했다고 외치더라. ‘갬블러! 갬블러!’ 우리 이름을 불러주는데, 소름이 돋았어. 무대에서 내려올 때 다들 다가와서 ‘너희가 진정한 1등이야’라고 말해주니깐 되게 감동받았지.
동욱 : 나도 세계 대회 나가서 내 이름을 알리는 게 꿈이야. 그런 날이 오겠지?
규상 : 당연하지. 지금 멈추면 안 돼. 1:1 배틀에서도 난 꼭 우승할 거야. 비보이는 연습과 끈기와 표현력이 우선이란 거 알지? 어떤 순간에도 포기하지 말고, 너만의 춤을 만들어내야 해!
규상 씨는 ‘배틀오브더이어’ 북유럽 예선전 게스트 공연에 초청돼 주말 프랑스로 떠난다. 동생은 국내에 남아 또 잠도 이루지 못한 채 연습에 매진할 것이다. 갬블러 연습장 불은 새벽 내내 꺼지지도 않을 거다.
‘갬블러 크루’ 말말말
백승완(21) = 친 형의 춤을 보고 깜짝 놀라 시작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게 내 춤의 신조. 비보이는 아트(Art)다.
임석용(21) = 초등학교 4학년 때 동네 축제에서 비보이 춤을 보고 반했다. 세계 모든 땅에 내 춤의 자취를 그려줄 테다!
정형식(26) = 있으니까. 곧 죽어도 스타일이다. 멋있어서 춤이 좋다. 춤은 나를 살게 하는 힘이다.
이준학(25) =서태지와 아이들 ‘컴백홈’에 충격 받았고, 지하철에서 형들의 춤을 보고 시작했다. 생각한 것은 모두 행동으로 옮긴다는 게 내 신조다. 비보이는 내 행복의 결정체다.
홍성진(24) = 비보이 형들이 멋있어서 좋았다. 비보이는 최고의 아티스트다. 비보이 춤으로 기네스북에 꼭 도전할 테다.
홍성식(25) = 다섯 살 때 형들 보고 춤을 시작했다. 자존심보다 자신감을 보이는 댄서가 되겠다. 노력이란 단어는 배신하지 않더라.
김연수(23) = 초등학교 6학년 때 친형이 비보이를 시작해 나도 따라 갔다. 비보이는 내 인생 전부다.
조재영(23) = 친구의 춤이 멋있어 시작했다. 늘 첫마음으로 도전한다.
박선학(25) = 학교 때 친구들이 학교 복도에서 춤을 추는걸 한 번 따라해 봤는데 최고였다. 비보이는 또 하나의 내가 된 거다.
장수용 (25) = 세상에 말로 표현할 수도 없이 멋진 아티스트가 많다는 걸 깨닫고 춤을 추고 있다. 비보이는 내 인생 전부다.
변인숙기자 baram4u@donga.com
사진 =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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