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 시합이.”
통산 870승에 빛나는 명장이 871번째 승리를 얻기까지 택한 비책은 기다림이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기가 가장 힘든 상황에서도 김인식 한화 감독은 움직이지 않았다.
4일 KIA전 승리(4-1)까지 한화는 1986년 창단 이래 개막 최다연패(5연패)에 허덕이고 있었다. 김 감독은 그런 기록이 진행중인지 “몰랐다”고 했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란 생각이 들더라”란 고백으로 그동안의 고뇌를 내비쳤다.
김 감독은 “연패하다보니 (김)태균이 생각도 나고, 부상자들이 아쉽더라고. 걱정이야 됐지만 선수들에게 내색 안 했어. 화도 나도 그랬지만 오래하다 보니 참는 법을 알게 됐어. 화내서 득될 게 없더라고. 심적으로 약한 선수는 감독이 뭐라하면 오히려 주눅드니까 더 주문을 안했어”라고 연패 기간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던 내막을 설명했다.
실제 경기 전 한화 덕아웃의 분위기는 5연패 팀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온했다. 강석천 코치는 “이제 126경기 중 5개 했는데”라며 불의의 연패에 개의치 않는 반응을 보였다. 선수들 역시 송진우 등 고참급이 밝은 분위기를 주도했고 젊은 선수들도 동조했다. 오히려 연승을 거두고 올라온 KIA가 어딘지 조급하고, 가라앉은 느낌이었다.
이에 대해 LG에서 한화로 이적한 추승우는 “김인식 감독님 덕분”이라고 진단했다. “LG에선 지는 날이면 라커룸 불이 꺼지고, 선수 누구 하나 얘기를 못 꺼낸다. 그러나 한화는 감독님이 먼저 나서서 선수들에게 털자고 얘기해 주신다. 5연패 동안 말 한마디 없으셨다”라고 들려줬다.
김 감독은 류현진의 완투와 클락의 8회 3점홈런 등 그다운 방식으로 끝내 이겼다. 선수들을 믿고 기다려줬고, 그 보답을 받았다. 이 과정을 거치며 감독과 선수의 신뢰는 한층 깊어졌을 것이다. 승리 직후, 김 감독은 “한 번 이긴 것 갖고 말 너무 많이 하는 것 같아”란 특유의 촌철살인을 남기고 덕아웃을 떠났다. 김 감독이 여유를 잃지 않는 한, 한화가 쉽게 흔들릴 것 같지는 않다.
김영준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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