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생들에게 외면당해 온 철학 과목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6일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뉴욕시립대의 경우 철학이 전공인 학생이 6년 전보다 50%나 늘어난 322명에 이른다. 미국 로스쿨 지망생들이 치르는 LSAT(Law School Admission Test·법과대학원 입학시험) 성적을 분석했더니 학부에서 철학을 전공했던 학생의 평균 점수가 전체 2위였다. 1위는 물리학 전공 학생.
▷LSAT는 미국에서 논리적 분석적 사고력을 측정하는 대표적인 시험이다. 이런 능력을 배양하는 데는 철학 공부가 안성맞춤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미국 대학생들은 로스쿨 진학에 유리하다는 실용적 이유 말고도 불확실한 미래를 헤쳐 나갈 ‘나침판’으로서 철학 공부를 선호한다. 서울대 인문대가 지난해 개설한 ‘최고지도자 인문학 과정’이 예상외로 성황을 이룬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과정에 등록한 최고경영자들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경영의 지혜를 얻었다고 말했다.
▷‘철학의 부활’ 움직임은 국내 대학입시에서도 감지된다. 올해 입시에서 상위권 대학들의 철학과 입학경쟁률이 상승했다. 대학 관계자들은 내년 3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개교와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로스쿨 개교와 함께 법대는 사라지게 되는데, 이 경우 아무래도 철학을 전공하는 것이 졸업 후 로스쿨 진학에 유리할 거라고 생각하는 학생이 많다는 것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반가운 일이다.
▷7월 말 서울에선 ‘철학 올림픽’으로 불리는 제22차 세계철학대회가 열린다. 1900년 창설돼 유럽 문화권에서만 개최되다가 처음으로 비(非)유럽 지역에서 열리는 대회다. ‘오늘의 철학을 다시 생각한다’가 주제다. 철학은 인류의 오랜 지혜가 녹아 있는 ‘학문의 고전’이지만 오늘날 ‘다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보면 철학은 늘 같은 자리에 있었는데 현대인이 시류에 휩쓸려 진가를 몰라봤던 것은 아닐까. 철학의 생명력은 인간이 ‘생각하는 동물’임을 포기하지 않는 한 영원할 것이다. 세계철학대회를 계기로 한국이 ‘철학 다시 보기’에 앞장서는 문화적 발신지가 됐으면 한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