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탁구 세계 제패.’ ‘이에리사 전 대전 무패 최우수 선수로 각광.’
1973년 4월 10일자 동아일보 1면 머리기사의 제목이다. ‘만리장성’ 중국과 ‘라이벌’ 일본을 멋지게 꺾었다. 4월 9일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에서 열린 제32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 단체전에서 한국 여걸들이 당시 세계 최강이던 중국과 일본을 무너뜨리고 9전 전승으로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 건국 이후 첫 국제대회 금메달이자 한국 구기가 세계를 제패한 첫출발이었다.
당시 세계 제패의 주인공은 이에리사(현 태릉선수촌장)와 정현숙(현 대한탁구협회 홍보이사), 박미라 ‘트리오’였다. 이 셋 중 특히 최연소로 19세 소녀였던 이에리사가 ‘사라예보의 영웅’으로 팬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당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기도 하지만 이름이 특이했기 때문. 가톨릭 세례명인 줄 아는 사람이 많은데 그가 태어나기 2년 전인 1952년 즉위한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이름을 한국식으로 따온 것이다. ‘에리사’는 한국 탁구의 전설이 됐다.
한국이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700회 랠리. 이에리사는 1년 선배 정현숙과 함께 당시 천영석(현 대한탁구협회 회장) 서울여상 감독의 지도로 한번에 700회 동안 볼이 떨어지지 않게 하는 훈련을 받았다. 2.5g의 깃털 같은 무게 탓에 천변만화(千變萬化·변화가 무궁함)하는 탁구공의 회전을 감안하면 700회 랠리는 상상도 못할 훈련. 한번 시작해 각자 700번의 스매싱을 하는 데만 45분이 걸리는 지옥훈련이었다. 중간에 떨어지면 다시 시작해야 했다.
세계를 제패한 이에리사는 1977년 은퇴한 뒤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1988년 서울 올림픽 양영자-현정화 조의 여자복식 금메달을 조련했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는 김경아의 여자단식 동메달을 이끌었다. 박사학위 취득 후 2002년 용인대 사회체육과 교수를 거쳐 2005년 태릉선수촌장이 됐다.
이에리사는 올 초 올림픽메달리스트 168명에게서 한국 최초의 여성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추대받았다. 아직 대한올림픽위원회(KOC)의 추천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에리사는 IOC 위원으로 사라예보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