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의 마음이 신의 입김이나 정체불명의 단일한 근원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마음은 아폴로 우주선처럼 수많은 공학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계되었고, 각기 다른 과제들을 극복하도록 고안된 여러 개의 첨단 체계들로 구성되어 있다.”》
마음은 정교한 컴퓨터 프로그램
인간의 마음이 수많은 공학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계된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주제다.
저자는 유명 진화심리학자인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교수. 인간은 백지상태로 태어나고 그 백지에 무엇이 쓰일지는 양육(nurture)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에 반기를 들었던 인물이다. 양육 대신 인간의 타고난 본성(nature)을 강조하는 그는 이 책에서 마음이 추상적인 심리 현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마음은 곧 뇌라는 말이다.
저자는 뇌가 외부에서 들어온 정보를 처리하는 연산체계를 면밀히 분석한다. 인간이 보고 걷고 계획하고 계획한 바를 실행해 옮길 때, 뇌는 복잡하고 정교한 작동 과정을 거친다. 입력 장치를 통해 받아들인 자극을 정보로 전환하고 내장된 프로그램인 기억 장치, 중앙처리 장치를 거쳐 출력 장치로 결과물을 내보내는 첨단 체계가 마음이라는 것.
이런 논리에 따르면 마음은 컴퓨터와 똑같다. 하지만 하나의 중앙연산장치에 의해 통제되는 단일한 체계는 아니라고 핑커 교수는 말한다.
그는 마음이 여러 개의 모듈(컴퓨터 프로그램을 기능별로 분할한 논리적인 일부분)로 구성돼 있으며 각각의 모듈은 뇌와 외부 세계의 상호작용을 전담하도록 특별히 설계됐다고 말한다. 다양한 기능의 모듈이 독립적인 통제권을 갖고 상황에 따라 함께 작동하거나 따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마음이 처음부터 이렇게 모든 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첨단 기계였을까. 핑커 교수는 현재 마음의 작동 체계는 오랜 세월 진화해온 결과라고 말한다. 저자가 마음 진화의 기원을 추적하는 방법은 역설계다. 기계가 특정한 일을 하도록 하는 일이 설계다. 역설계는 그 반대다. 이미 만들어진 기계의 작동 방식을 분석해 어떤 일을 하도록 설계됐는지 알아내는 과정이다.
저자는 현재 마음의 주요 기능을 분석한 뒤,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이 오래전 인류의 조상이 환경을 극복하고 생존하기 위해 부닥쳤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곧 ‘자연 선택’ 과정에서 설계됐다고 말한다. 인간이 진화함에 따라 대처해야 하는 환경이 복잡해지면서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음 체계의 설계 수준도 고도화되어 왔다는 것이다.
웃고 말하고 예술에 감탄하고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할 때조차 인간의 마음은 복잡한 연산 과정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혼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언어학, 컴퓨터학, 진화생물학, 뇌과학을 넘나들며 마음의 작동 원리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이를 바탕으로 지각, 사고, 감성, 사회성 같은 마음의 주요 기능을 해부해 마음을 추상적인 심리학의 영역이 아니라 통합 학문의 연구 대상으로 끌어 올린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