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도 크루즈 여행 시대가 열렸다.
부산을 모항으로 한 팬스타허니호(1만5000t급)가 여객 194명을 태우고 3박 4일 일정으로 떠난 남해안 연안 크루즈(부산 해운대∼전남 여수∼경남 진해)를 마치고 지난 5일 귀항했다.
이 배를 타고 직접 체험한 한국 최초의 남해안 연안 크루즈 여행기를 소개한다.》
다도해 선상서 붉게 솟는 해를 맞는 감격!
2일 오후 6시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 앞 부두.
온통 흰색의 크루즈십 팬스타허니호가 힘찬 기적을 울리며 출항했다. 국내 최초의 크루즈 여행이 시작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나는 이 배의 최고 갑판(건물로 치면 7층 옥상)에서 이 광경을 지켜봤다. 부두에서 멀어지면서 부산 도심 전경이 서서히 시야에 들어왔다. 왼편으로 영도와 부산대교, 정면으로 용두산공원과 부산타워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빌딩 숲, 오른편으로 거대한 컨테이너 부두…. 뻔질나게 오갔어도 이렇듯 멋진 항도 부산의 풍광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크루즈 여행이 주는 보너스였다.
○ 즐기고 휴식하고 잠자는 꿈의 여행 국내 선보여
1만5000t(길이 137m)의 크루즈십 팬스타허니호는 일본의 연안 여객선을 개조한 ‘작품’이다. 조선대국 한국에서도 크루즈십은 건조 경험이 일천하다. 그래서 노하우 역시 부족하다. 팬스타허니호는 그런 가운데 태어났다. 시설이 세계 정상급 크루즈십에 비할 수는 없지만 우리 힘으로 개조한 것으로는 수작(秀作)이다.
첫 일정은 남해안 크루즈. 한려수도를 가로질러 여수까지 갔다가 군항제가 열리는 진해를 거쳐 부산으로 귀항하는 3박 4일 일정이었다. 선상에서 사흘 밤을 지내고 기항지 관광은 이틀(여수 진해)간 즐긴다. 첫날 밤은 해운대 해상에서 광안대교를 보며 불꽃놀이도 즐겼다.
크루즈 여행의 묘미는 ‘이동시간’을 번다는 점이다. 즐기고 휴식하고 잠자는 동안 이동하는 기동성 덕분이다. 막상 체험해 보니 그 편안함과 시(時)테크 상의 경제성은 상상 이상이었다. 게다가 새벽에는 다도해에서 선상 해돋이까지 즐기니 일거양득이 아닐 수 없다.
기항지 관광(옵션)도 효과적이었다. 군항제가 한창인 진해에서는 제황산과 해군사관학교 등 주요 행사장에 일찌감치(오전 10시) 도착할 수 있어 관광이 수월했다. 여수에서도 같았다. 여유 있게 오동도와 향일암, 엑스포홍보관을 두루 둘러볼 수 있었다. 기항지 관광은 옵션투어여서 원하는 승객만 요금을 내고 참가한다.
기항지 투어를 마치고 귀선하는 시간은 오후 4시30분. 이후에는 배에서 휴식하며 즐기는 일정이다. 카지노(초콜릿 칩을 이용한 룰렛과 블랙잭 체험코스)와 휴게실(전동 안마기), 인터넷 카페, 목욕탕, 노래방 등의 시설을 갖췄다. 갑판에서 바다를 향해 샷을 날리는 드라이빙 레인지도 있었다. 바닷물에 자연분해되는 친환경 소재 공을 사용한다. 공연은 매일 밤 펼쳐진다. 마술쇼와 기타 연주, 우크라이나 공연 팀의 댄스와 특별공연이 마련되는데 최고 인기는 여승무원들의 뮤지컬 갈라 공연. 공연을 마친 후에는 나이트클럽으로 탈바꿈된다.
식사는 뷔페로 제공되는데 매일 테마가 바뀌었다. 간식으로 떡볶이와 순대 등이 제공(24시간)됐다. 수시로 강습(바리스타의 커피 내리기, 사교댄스, 요가, 와인 즐기기 등)도 열린다.
○ 유류 면세 제도 도입, 가격 낮춰야
크루즈 여행의 가격(1인당 1박 기준)은 객실(2인실부터) 종류에 좌우된다. 공동화장실을 이용하는 텐트형의 ‘캠프’(14만800원)와 ‘이층침대’(17만3800원)가 저렴하며 전용 발코니에 샤워부스 화장실을 갖춘 발코니스위트(31만6800원)가 고급형이다. 어르신이 선호하는 바닥형 객실(다인실)도 다양하게 있다.
크루즈십 팬스타허니호는 앞으로 연안은 물론 제주도와 금강산, 일본도 운항할 계획이다. 첫 취항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높은 가격이었다. 국제선과 달리 유류에 면세 혜택이 주어지지 않은 것도 한 요인이다. 여행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가 크루즈 산업 육성을 선언한 만큼 국내 크루즈에 대한 유류 면세 제도가 검토됐으면 한다.
팬스타허니호 선상=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 영상취재 : 동아일보 특집팀 조성하 기자
▲ 영상취재 : 동아일보 특집팀 조성하 기자
▲ 영상취재 : 동아일보 특집팀 조성하 기자
첫날 서비스 부실해 걱정
시간 갈수록 점점 좋아져
행복한 여행으로 마무리
‘크루즈십=배+호텔.’ 즉, ‘움직이는 호텔’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크루즈 하면 배 이미지부터 떠올린다. 그러나 크루즈의 실체는 배가 아니다. 호텔, 즉 서비스다. 배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하드웨어(수송 수단)에 불과하다.
내가 최초의 국내 연안 크루즈에 별반 기대를 걸지 않았던 이유도 그거다. 크루즈라는 것이 워낙 세련된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고품격 여행이어서다. 국내 최초로 크루즈 사업에 뛰어든 팬스타그룹의 승객 수송 경력은 6년(부산∼일본 오사카 카페리) 정도다. 해운대 1박의 주말 크루즈를 통해 크루즈 여행 사업의 노하우를 쌓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우아 격조 고품격’의 서비스로 승객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출항 첫날 저녁. 불행히도 우려는 현실로 바뀌었다. 승무원은 우왕좌왕했고 레스토랑은 음식 부족으로 품격과 격조를 잃었다. 입국비자 발급 지연으로 인한 러시아 피아니스트의 결장으로 급조된 첫날 밤의 선상 공연도 절반의 성공이었다. 선내는 페인트 냄새로 머리가 아팠고 간식 등 기대되던 서비스는 불발에 그쳤다. 승객의 불만은 당연했고 국내 크루즈의 미래를 우려하는 걱정의 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이렇게 첫날 밤이 지났다. 이튿날 새벽. 크고 작은 섬이 수면 위로 숲을 이룬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수평선에서 붉은 해가 솟았다. 선상 일출 감상은 해돋이여행의 절정이다. 그런데 그날 일출은 다시 보기 힘들 만큼 멋졌다. 그런 좋은 기운 덕분일까. 이사 첫날 아기 돌상 내듯 두서없던 선내 서비스가 하룻밤 새 몰라보게 개선됐다. 우연은 아니었다. 밤새워 미진한 부분을 채우고 서비스 체계를 조정하는 등 노력한 결과였다. 출항 준비로 이미 사흘 밤을 꼬박 새워 한계에 도달한 상태였지만….
출항 사흘째인 선상의 마지막 날 밤. 마술 공연과 승객 노래마당이 끝난 후 바다 한가운데 선 크루즈십의 공연장에서는 통돼지구이에 와인을 곁들인 조촐한 갈라 파티가 마련됐다. 선사 측이 그동안 불편과 미진한 서비스에 대해 사과를 겸해 연 환송파티였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예상됐던 질타와 비난 대신 오히려 뜨거운 격려와 감사 박수가 터져 나온 것이었다. 그런 불편에도 불구하고 격려와 박수를 보낼 수 있었던 이유. 크루즈 여행객의 높은 수준, 승무원과 선사 측이 보여준 각고의 노력과 성의 덕분이었다.
이날 밤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여행의 즐거움이 호사스러운 시설과 서비스, 관광에만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가는 허리에 앳된 모습의 새내기 여승무원이 박스 상태로 깊숙이 묻힌 와인 한 병을 서브하기 위해 20분간 창고를 뒤지는 수고를 아끼지 않을 때, 사흘 밤 새우잠을 자고도 미소를 잃지 않은 채 승객을 편안히 모시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것은 곧 감동이었고 덕분에 승객은 행복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행은 왜 할까. 만약 행복하기 위해서라면 이번 남해안 연안 크루즈는 최고의 여행이었다. 왜? 정말로 행복했으니까.
팬스타허니호 선상=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여행정보|
◇팬스타 크루즈 ▽운항사=㈜팬스타라인닷컴(www.panstarline.com) 1577-9996 ▽상품판매=㈜여행박사(www.tourbaksa.co.kr) 070-7017-2100
◇필요한 정보 ▽할인 특전(2박 이상)=150일 전 예약 시 1명 무료, 120일 전 20%, 90일 전 15%, 60일 전 5% 할인 ▽내 차로 크루즈=차량을 싣고 가 기항지에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12월 1일까지는 무료며 이후 중형 승용차 기준 1만8000원 ▽크루즈 탑승=전 일정(3박 4일) 중 부분 일정(1박 혹은 2박)도 가능. 중간 기항지에서 내리고 탄다 ▽뱃멀미=우려할 정도는 아니나 개인차가 있고 항해 중 날씨 영향도 있으니 멀미약은 준비해 두기를 권한다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 △찾아가기: 중구 중앙동. 부산역 광장의 아리랑호텔 앞 택시 승강장에서 출발하는 순환버스가 가장 편리(10분 소요·900원). 051-465-9782 △관광안내소: 051-465-34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