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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에서]셰익스피어 비틀기 되고 ‘삼국지’바꿔보기는 안되나

입력 | 2008-04-11 02:59:00

조자룡을 중심으로 ‘삼국지연의’를 새롭게 각색한 영화 ‘삼국지-용의 부활’. 사진 제공 태원엔터테인먼트


#1. 한중 합작 블록버스터 영화 ‘삼국지-용의 부활’의 관객이 개봉 첫 주말 30만8000명에 그쳤다. 영화계에서 예상 관객을 첫 주말의 3∼4배로 추정하는 점을 감안하면 이 영화는 100만∼120만이라는 기대 이하의 성과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삼국지-용의 부활’은 200억 원의 제작비와 류더화, 훙진바오, 매기 큐 등 스타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았다. 고전 ‘삼국지’를 스크린으로 옮긴다는 점 덕분에 상반기 기대작 중 하나로 손꼽혔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자 반응은 저조했다.

기대에 못 미치는 액션 장면 등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지만 영화의 줄거리가 원전 ‘삼국지연의’와 다르다는 관객들의 불만이 불거지고 있다. 이 영화는 삼국지연의의 주인공인 유비 관우 장비보다 조자룡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새로운 해석이 깃든 ‘각색’ 부분이 늘었다. 원전에 대해 다양한 시점에서 해석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삼국지’라는 말은 빼라” “조자룡은 북벌의 총사령관이 아니었다” “조자룡은 전사한 것이 아니라 노환으로 죽었다” “천하의 제갈량이 조조의 손녀에게 속는 것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등 원작과 다른 부분을 조목조목 지적한 글이 수십 개에 이른다.

#2. 올봄 공연계에는 ‘셰익스피어 붐’이 일고 있다. 이 중에는 원작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줄거리나 상황을 ‘비튼’ 작품도 많았다. ‘셰익스피어의 모든 것’에서는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 등 셰익스피어의 대표 비극을 코믹하게 재해석한 패러디로 인기를 끌었고 ‘줄리에게 박수를’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준비 중인 연극배우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원작의 주인공인 맥베스 대신 멕베스의 부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연극 ‘레이디 멕베스’는 서울 예술의 전당이 지난해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예술의 전당에서 다시 보고 싶은 최고의 연극 1위’로 선정돼 최근 6년 만에 다시 막이 올랐다.

영화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셰익스피어의 무명작가 시절을 다룬 ‘셰익스피어 인 러브’를 비롯해 여러 영화가 주목받았다. 김미예 동덕여대 영문과 교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오랜 기간 생명력을 유지한 것은 다양한 해석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전이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읽히는 것은 시대마다 다양하게 해석되고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국지연의를 새롭게 해석한 ‘삼국지-용의 부활’은 국내에서 환영받지 못한 듯하다. 영화사 측은 “문화적 뿌리라고 여기는 고전이 변형되는 데에 대한 우리 관객의 거부감이 이렇게 클 줄 몰랐다”고 말했다. 우리 문화가 더 풍성해지려면 고전을 다양하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게 필요할 것 같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